알렉상드르 타로의 에세이집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는 무대에 올라서기 직전에 그가 거울 속에서 만난 한 피아노 연주자의 외양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책의 서문이자 필자를 소개하는 이 짧은 글은 이어질 내용이 ‘피아노 연주자인 자신을 아주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는 나’의 글이 될 것을 짐작하게 한다.

서양음악에 관한 글쓰기에서 ‘무대 위의 연주’는 가장 까다로운 글감 중 하나다. 그 원인은 여럿이겠으나 우선 가장 근본적인 난점은 이것이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시간이 지나면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다. 음반이나 영상과 달리 공연으로만 접한 연주에 관해 쓸 때는 정량화된 데이터나 기록물에 의존하기가 어렵다. 그저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만 의지해 그 연주를 복기하며 뭔가를 써내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또 공연장에서는 연주 말고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일이 얽히고설키며 연주에 개입하는데, 그 모든 미묘한 관계를 글에 모두 담아내기도 결코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의 원성을 사는 기침 소리는 물론 연주자들끼리 주고받는 눈짓, 소리로 들려오진 않지만 분명히 감지되는 객석의 기류 같은 것이 그 예다. 이러한 ‘현장성’은 연주에 대한 일목요연한 글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주범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직접 공연장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에서 타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피아노 연주자가 공연장에서 겪는 일들이다. 물론 바흐나 쇼팽 등 그가 자신을 잊고 몰입해서 연주해야 할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글의 중요한 일부다. 하지만 그는 흔히 공연의 주변부로 여겨졌던 요소나 관객 시점에서 보고 들을 수 없었던 무대의 이면을 소개하는 데 더욱 집중한다. 불안과 긴장 가득한 자신의 꿈부터 날 선 몸의 감각, 언제나 그가 지니고 다니는 악보들, 공연장이 뿜어내는 위용, 조율사와의 소통, 무대로 걸어 나오는 자신의 걸음걸이, 연주 직전에 손을 가다듬는 찰나의 순간, 객석에서 늘 들려오는 사탕 껍질 소리와 마른 헛기침, 악보를 넘겨주는 이와의 미묘한 호흡, 공연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의 음향, 그리고 텅 빈 객석을 바라볼 때의 역설적인 충만함까지. 음악과 더불어 공연을 구성하는 이 크고 작은 요인들은 무대 위의 주인공이자 예리한 관찰자인 타로에게 흥미로운 글감이 된다.

지나치기 쉬운 이 요인들을 하나하나 포착하는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가 음악만큼이나 ‘공연’에 매료된 것처럼 보인다. 타로에게는 공간, 분위기, 몸짓, 손짓, 크고 작은 소리 등 이 모든 것이 결코 부수적인 것들이나 소음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그에게 연주 도중에 사탕 봉지를 조용히 여는 관객은 서로 마주치지 않고 말도 나누지 않지만 함께 한 곡의 실내악을 연주하는 충실한 파트너이고, 연주 시작 전의 박수갈채는 청중의 몰입도와 공간의 음향을 측정하는 중요한 가늠자다. 돌이켜보면 청중 입장에서 공연을 볼 때도 음악과 음악 아닌 것을 엄밀하게 갈라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던 것 같다. 지휘자가 무대로 걸어 나오는 순간부터 이미 음악이 시작되는 것 같았을 때, 한 곡의 연주가 끝나고 소리는 완전히 잦아들었지만 연주자들이 여전히 음악을 듣고 있다고 느껴질 때 등 공연에서는 말 그대로 모든 순간이 음악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듯했다.

만약 우리가 음악을 소리의 예술이 아니라 공연의 예술로 접근한다면 공연에서 맞닥뜨린 어떤 요인을 음악 외적인 것으로 분리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타로도 기나긴 지면을 할애해 공연을 지탱하는 그 수많은 요인을 하나하나 음악적 대상으로 불러낸 것일 테다. 그 어수선하고도 다뤄내기 까다로운 ‘무대 위의 연주’에 관한 이야기를 공연 전체에 관한 이야기로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타로의 글을 읽다 보면 음악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더욱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공연’이라는 사건의 정체는 무엇이고 우리는 거기서 어떤 음악적 순간을 즐기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며 공연의 여러 결을 촘촘히 드러낸 글을 읽는 것은 접하기 드문 행운이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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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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