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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해야 한다. 몸도 마음도.” 친구와 통화를 끊기 전, 저 말을 건넸다. 그는 지병으로 고생하다가 작년 말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무엇을 제일 하고 싶은지 묻자 전국에 있는 공원에 가고 싶다고 한다. “일단 집 근처에 있는 공원부터 가야지. 집과 병원만 오가다 보니 오래 살았는데도 이 동네가 좀 낯설어.” 하고 싶은 일이 의외로 소박한 것이어서 놀랐다. 전국에는 무수히 많은 공원이 있을 테니, 소박하지만 커다란 꿈이다. 몸과 마음이 둘 다 건강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는 계획이기도 하다.

공원을 다니면서 틈틈이 전국에 있는 산에 오르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거 알아? 우리나라에 산이 4000개가 넘게 있대. 하루에 하나씩 오른다고 해도 10년도 더 걸리겠지.” 친구는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하기 바쁘고 코앞에 다가온 일정에 전전긍긍하는 나와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따로 계획이 있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밥부터 먹고 생각할게. 쌀을 불려두었거든.”

밥을 먹으면서 친구의 그것처럼 거창하지는 않아도 목표를 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목표라고 하면 무거우니 계획이라는 말이 적당할 듯싶었다. ‘신중해지기’를 첫 줄에 적었다. 하루아침에 달성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는 당도하고 싶은 상태이기도 했다. 신중함은 조심스러움과 맞닿아 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뒤에야 자신의 말을 건네는 우직함이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삼가려는 미덕도 가지고 있다. 신중함의 반대말은 경솔함일 텐데, 이는 말을 많이 쏟아내곤 하는 내가 종종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직관을 통해 판단하곤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신중해지는 일은 쉽지 않다. 직관은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것인데, 이는 보통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직관이 통찰로 연결되면 좋지만, 섣부른 판단으로 인해 손해를 입을 때도 있다. 직관이 발달한 사람들은 한눈에 꿰뚫어보는 데서 쾌감을 얻지만, 어쩌면 이는 심증에 기반을 둔 오해일지도 모른다. 직관이 논증으로 연결되지 않을 때, 가설만 무수한 실험실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든다. 직관은 때때로 눈치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재치를 발휘하려다 선을 넘거나 허방을 짚는 일도 생긴다.

개인의 성정 이외에도 신중함을 방해하는 요소는 또 있다. 뉴스가 삽시간에 퍼지는 요즘에는 신중해지는 일이 점점 요원해진다. 사건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앞다퉈 거기에 대한 논평을 낸다. 지금 아니면 실효성을 잃는다는 듯이, 남보다 먼저 이 주제를 선점해야 한다는 듯이. 간혹 해당 사안에 대하여 어떤 입장인지 의견 표명을 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일은 어떤 면에서는 간편하다. 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이도, 시민사회의 일원임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감은 천천히 이루어지는 작용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승우의 단편 ‘신중한 사람’을 읽다가 다음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부자연스러운 것을 꺼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더 잘 받아들이는데,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거부하는 자신의 태도가 혹시 만들어낼지도 모를 더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끔찍해하기 때문이다.” 경솔함은 일을 그르치기도 하지만, 그것을 추진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신중함은 실수할 확률을 줄여주지만, 지나친 신중함은 일을 시작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양날의 칼과 같으므로, 가운데에서 균형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

내게 글을 쓰는 시간은 경솔함을 만회하는 시간이다. 응어리진 것들을 충분히 놔두는 시간이기도 하다. 신중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른 것을 모른 척하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무른 것이 물러 터질 때까지 기다려주는 태도다. 신중해지기. 내게도 소박하지만 커다란 꿈이 생겼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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