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출판사 다닐 때였습니다. 편집인쇄 맡긴 학회 간사가 전화해서 대뜸, 일을 왜 이따위로 해서 윗선에 욕먹게 만드냐고 노발대발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쪽에서 보낸 메일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하니, 그렇더라도 알아서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되레 역정을 실컷 내더니 수화기 꽝 끊더군요. 이거 원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긴다더니, 자기 잘못으로 윗사람한테 혼나고 왜 죄 없는 이쪽에 화풀이인 건지요.

속담에 ‘한양에서 매 맞고 송도에서 주먹질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송도(松都)는 개성(開城)의 옛 이름입니다. 부근 사람들은 여전히 개성을 송도라 불렀다지요. 아무튼 고려의 수도에서 일개 대도시로 전락했지만 대신에 개성상인으로 유명할 만큼 상업도시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조달청 직원에 해당할 어느 관리가 발주를 잘못해서 상사로부터 ‘송도로 뛰어가 똑바로 다시 해와!’라는 불호령과 함께 물볼기를 맞았다 칩시다. 관리는 노기탱천을 애먼 상인을 만나 두드려 패서 풀었겠지요. 납품권 잃지 않으려면 어쩝니까. 그저 제가 잘못했습니다, 분 풀리실 때까지 맞아 드려야죠.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긴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시대 종로의 현 광화문광장 양옆은 육조(六曹)거리라 하여 여러 관청들로 즐비했습니다. 거기서 윗사람한테 하급관원이 혼쭐납니다. 한강 물길로 조달된 관용물품 수량산출에 착오를 내서였겠지요. 서당도 못 나왔냐, 손가락셈도 못하는 바보냐며 온갖 모욕을 당합니다. 그 분기와 짜증, 어디다 풀겠습니까? 운송인과 창고지기한테 애꿎게 트집 잡겠지요.

내가 잘못한 건 알지만 해도 너무하잖아! 하면서 왜 죄 없는 사람에게 똑같이 하는 걸까요. 노갑이을(怒甲移乙)하다간 노을(怒乙)한테 된통 당할 날이 분명코 올 텐데요. ‘그래 너 언제 한번 제대로 ×되게 해준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