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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경향시선

솜반천길

경향 신문 2019. 9. 2. 14:14

물은 바다로 흘러가는데


길은 어디로 흘러갈까요


솜반천으로 가는 솜반천길


길도 물 따라 흘러


바다로 흘러가지요


아무리 힘들게


오르막길 오르더라도


결국엔 내리막길로 흘러가죠


솜반천길 걸으면


작은 교회


문 닫은 슈퍼


평수 넓지 않은 빌라


솜반천으로 흘러가네요


폐지 줍는 리어카 바퀴 옆


모여드는 참새 몇 마리


송사리 같은 아이들


슬리퍼 신고 내달리다


한 짝이 벗겨져도 좋은 길


흘러가요


종남소, 고냉이소, 도고리소,


나꿈소, 괴야소, 막은소…


이렇게 작은 물웅덩이들에게


하나하나 이름 붙인


솜반천 마을 사람들


흘러가요


현택훈(197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솜반천은 제주의 도심 속에 있는 생태하천이자 천지연 폭포의 상류에 있는 물줄기이다.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른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에서 살고 있는 시인은 넓은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솜반천길을 따라 걸으면서 도중에 만난 것들을 하나하나 집어 말한다. 시인은 신앙, 매일매일 이어지는 생활의 곤란, 어린아이들의 즐거운 동심 등등을 만나고 본다. 그리고 솜반천이 푸른 바다로 나아가는 길에 만든 우묵한 물웅덩이들을 주목한다. 그 물웅덩이들에게 방언으로 특별하게 이름을 부여한 마을 사람들의 푸근한 마음도 읽는다. 이 모두는 솜반천 천변의 시간과 풍경, 일상을 구성하는 것들이며, 평범하고 반복되고 세세해보이지만 매우 귀중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들이다. 아침의 선선해진 공기, 귀뚜라미 울음소리, 밝은 달, 햇사과 등이 9월의 가을을 이루듯이.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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