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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송두율 칼럼]기억문화와 예술

경향 신문 2019. 5. 21. 10:41

내가 지금 사는 거리는 좀 유별난 역사를 담고 있다. 탐스러운 수국(水菊)꽃의 이름을 딴 거리지만 독일 현대사의 암울했던 기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히틀러를 제거하고 새로운 독일을 건설하려고 비밀리에 움직였던 ‘크라이스아우(Kreisau)’ 서클의 주요 인물들이 이 거리를 중심으로 해서 근처에 살았다. 이 비밀조직에 가입했던 프러시아 귀족의 후손이나 시민계급 출신의 다양한 인물들은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이 1944년 7월20일 시도한 히틀러 암살이 실패로 끝나자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톰 크루즈가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의 역을 맡았던 영화 <발키리>가 있었지만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같은 시기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페터 요크 폰 바르텐부르크 백작이 살았던 집의 벽에는 지금 그를 기리는 동판이 붙어 있다. 역시 이 거리에 살았던 개신교 목사 오이겐 게르스텐마이어는 나치수용소에서 살아남아 후에 서독의 하원의장을 지냈다. 그의 이름을 딴 조그만 광장도 이 거리에 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나치 때 유대인과 동성애자에게 무거운 형을 구형해서 악명이 높았던 베를린 검사장이 살았다. 20여년 전 어느 날 바로 이웃집 앞의 보도에 놋쇠로 만든 조그만 포석(鋪石) 3개가 박혀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집에 살았던 세 여성의 이름 밑에 생년과 함께 지금은 독립국 라트비아의 수도지만, 한때 나치독일이 점령했던 리가(Riga)의 강제수용소로 압송된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유대인과 동성애자를 증오했던 나치 검사와 강제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삶을 마감해야만 했던 유대계 여성이 이렇게 서로 이웃하며 살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독일의 예술가 군터 뎀니히(Gunter Demnig)의 ‘걸림돌’(Stolpersteine)은 1992년부터 나치 때 희생된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그들이 살았던 집 앞의 보도에 가로, 세로 그리고 높이가 약 10㎝인 놋쇠로 만든 포석을 까는 작업을 시작했다. 독일만 아니라 유럽 23개국에서 아직도 진행 중인 이 작업은 어떤 장소 하나를 대형의 기념공간으로 만들지 않고, 유럽의 여러 곳에서 자행되었던 나치의 반인륜적 범죄를 고발하고 있다. 재정도 주로 성금으로 충당하고 있어 시민의 참여도가 아주 높은 기념물 조성작업이다. 일상에 묻혀 빠른 발걸음을 재촉하는 많은 사람들의 망각을 깨우는, 작지만 그러나 큰 울림을 주는 예술작업이다.

2005년 5월 조성돼 ‘홀로코스트 경고기념물’(Holocaust Mahnmal)이라고도 불리는 베를린 중심에 세워진 ‘유럽에서 살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 유대계의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맨(Peter Eisenman)이 설계한 이 기념물은 1만9000㎡의 부지에 크기가 서로 다른 검은 입방체형의 콘크리트 건조물 2711개로 구성되어 있다. 바닥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밀밭을 형상화했고,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장소를 통해 새로운 기억을 환기시키려는 의도를 담았다고 아이젠맨은 설명했다. 그러나 너무 추상적이라 접근하기가 힘들다는 느낌을 나는 받았다. 동시에 프라하에 있는 오래된 유대인 공동묘지도 연상되었다. 나치에 의해 살해된 사람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이른바 ‘집시’로 불리는 신티와 로마족, 정신박약자와 불구자 등 무수히 많았는데 이들이 기억 밖으로 밀려나간 것도 문제라고 느꼈다.

집단적 기억 속에 함께 들어 있는 슬픔, 죄의식, 수치감, 공포, 후회 등 복잡한 감정을 담은 기록과 전시물, 그리고 기념물이 자기가 속한 사회의 정체성을 부정한다는 이유에서 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나의 예로 10여년 전부터 당세를 급격하게 확장하고 있는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자랑할 수 있는 역사도 아주 많은 독일인데 하필이면 부정적인 것만을 애써 들추어내느냐고 비판하면서 이 홀로코스트 경고기념물의 철거도 주장한다.

우리 사회에도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의 서훈 문제나 ‘4·3’과 ‘5·18’을 둘러싼 논쟁이 보여주는 것처럼 기억문화와 관련된 심한 갈등이 있다. 심지어는 ‘세월호’의 유족을 향해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쳐먹는다”는 전직 국회의원의 망발이 나올 정도다. 이렇게 희생자를 ‘빨갱이’나 ‘앵벌이’로 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과연 어떤 건강한 기억정치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물론 기억의 내용과 형식을 담은 문화나 정치가 권력의 유지나 탈취에 선택적으로 동원되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래 함께 살면서 같이 보고 느끼고, 또 이를 기억해서 보다 인간적인 공동체의 건강한 기초를 다져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흥미있는 시대에 살고 싶습니까’라는 역설적인 주제 아래 5월11일부터 열리고 있는 5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된 한 설치작품을 둘러싼 논쟁이 아주 뜨겁다. 스위스 출신 크리스토프 뷔헬(Christoph Buchel)은 이탈리아의 람페두사섬 근처에서 아프리카 난민을 싣고 가다가 침몰했던, ‘우리들의 배’를 뜻하는 바르카 노스트라(Barca Nostra)호를 인양해서 베니스 항구에 전시했다. 작품설명서에는 ‘난파선, 2015년 4월18일’이라고 적혀 있다. 길이가 고작 22m인 이 조그만 낡은 배에 의지해서 희망의 땅을 찾아나섰던 800여명이 졸지에 생명을 잃었다. 전시 기획자는 시체를 담고 있는 거대한 관처럼 보이는 이 난파선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바라보는 태도로 경건하게 대할 것을 주문한다. 비엔날레가 끝나면 배를 지금 조성 중인 시칠리아섬에 있는 ‘기억의 정원’으로 옮길 것인지에 대해 논의 중이다. 그러나 유럽연합에 매우 비판적인 이탈리아의 현 총리 마테오 렌치는 배를 오히려 ‘난민 스캔들’을 낳은 장본인인 유럽연합의 본부 브뤼셀로 보내라고 하고, 또 극우세력은 이를 아예 철거하라고 항의한다.

우여곡절 끝에 인양되어 목포의 신항부두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세월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배가 혼자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으니 제발 모두가 힘을 합쳐 자신을 좀 일으켜달라고 호소하는 듯했다. 집단적인 무책임이 불러온 참사였기에 이에 대한 기억 역시 집단의 성찰 속에 오래 남아 있어야 한다. 사람은 아무도 더 이상 그를 기억하지 않을 때 정말로 죽는다는 말처럼 희생자들이 기억될 때만 그들이 우리 사회를 향해 보내는 애절한 호소와 절규도 지속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재앙과 불행의 망각을 경고하고 이를 기억하는 문화는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물론 쓰라린 기억을 그저 박제화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희미해지는 집단적인 기억을 순간에 일깨우고 이를 지속적으로 응축시키는 훌륭한 작품도 많이 있다. 1933년 5월10일 나치에 의해 비독일적이라고 지목된 책들이 불속에 던져졌던 베를린 베벨광장의 지하에는, 휑하게 빈 서가(書架)와 함께 “이것은 서막일 뿐이다. 책을 불태운 곳에서는 사람도 결국 불태운다”는 혁명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경구가 새겨진 작은 청동판이 있다. 이스라엘 출신의 미하 울만(Micha Ullman)의 작품이다. 이 작품과 더불어 앞서 언급한 ‘걸림돌’ 작업이 베를린에서 내가 쉽게 만날 수 있는, 기억문화를 인상적으로 전달하는 작품이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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