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를 넘긴 독일 생활을 뒤로하고 9월1일 포르투갈의 알가베로 이주해왔다. 베를린으로부터 무려 3000㎞나 떨어진 유럽 대륙의 끝자락이자,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이곳을 택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기후 때문이다. 1년 중 평균 300일 이상 햇볕이 내리쬐는 이곳을 그래서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북유럽 사람들이 많고 최근에는 러시아 사람도 꽤 늘었다. 과거 포르투갈령 인도의 고아나 중국의 마카오가 지닌 역사적 배경으로 이주해온 인도와 중국 사람을 제외한 그 밖의 아시아인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교포나 관광객으로 온 우리 동포를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최초의 글로벌 제국으로 지칭되는 포르투갈은 15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의 선두주자로서 세계를 제패했지만 후에 스페인에 밀려 쇠락하고 말았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무려 40여년 동안이나 살라자르의 독재체제에 시달렸다가 1974년 젊은 장교단이 이끈 ‘카네이션 혁명’으로 민주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다. 이 암울했던 시대적 배경을 담은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저자는 파스칼 메르시어인데, 이는 내가 1967~1968년 1년 동안 몸을 담았던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함께 철학을 공부했던 페터 비에리의 필명이다. 어떻든 동병상련의 심정에서 당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사회주의자들은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우리의 외로운 투쟁을 특별히 지지하고 성원했다.

나에게 독일 대학 강단에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동료 사회학자도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험난한 민족해방투쟁 끝에 독립을 쟁취한 기니비사우 정부의 고문이었다. 또 내가 47년 전 독일 대학 강단에 처음 섰을 때부터 인연을 맺은 제자도 아프리카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의 전문가로서 오랫동안 리스본대학의 사회학 교수였기에 포르투갈은 사실 나에게 그렇게 먼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유럽연합 안에서 이주하는 문제가 단순히 이삿짐을 싸들고 같은 나라의 어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과 많이 다를 것이라고는 예견했다. 이번에 나는 유럽연합이 현재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이주를 통해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스웨덴의 공장 노동자와 포르투갈의 포도농장 노동자의 생활수준이 비슷해지는지의 여부에 유럽연합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많이들 이야기했다. 핵심적인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단일 통화인 유로 덕택에 독일과 포르투갈 사이의 은행 결제가 당일로 가능할 정도로 경제적인 통합에서는 많은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2007년 말 리스본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합의를 보았던 유럽연합의 헌법 제정이 여전히 오리무중인 것처럼 정치적인 통합은 아직도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다.

‘유럽합중국’으로 가는 길 위에 민족국가의 긴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은 여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는 ‘브렉시트’, 난민과 이주 문제를 둘러싼 유럽연합 내의 갈등과 극우세력의 약진에서 우선 확인할 수 있다. 유럽의 통합과 화합의 소리에 못잖게 불협화음과 파열음도 크게 들리고 있는 현실은 물론 유럽만이 유별나게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지역적인 것과 지구적인 것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조정하느냐 하는 과제다. 최근 격화한 한·일 간의 갈등에서도 이 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흔히들 하나가 된 지구촌에서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는 모습으로 ‘디지털 노마드’의 예를 든다. 랩톱을 담은 배낭에 간단한 차림으로 전자상거래의 성지로 떠오른 카나리아제도의 라스팔마스나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우두 해변가를 찾아 노동과 자유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삶을 꾸리는 젊은이들의 숫자가 부쩍 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삶도 머물고 있는 지역이 끈질기게 요구하는 거주 허가, 세금, 건강보험 등을 포함한 여러 제약 속에 묶여 있다. 우리도 베를린에서 가지고 있던 차를 포기하고 알가베에서 새로 차를 구입해야만 했다. 한마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정도로 통관세와 각종 수수료가 너무 많은 데다 절차까지 복잡해서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역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제한 때문에 지레 겁먹고 스스로가 자신의 생활세계를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둘 수는 없다. 세계는 그래도 앞으로 보다 더 열리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지역적인 것의 의미도 당연히 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많은 경계선을 넘을 수밖에 없는 젊은 세대는 경계선을 뛰어넘는 것을 결코 두려워 말라는 말을 이 기회에 전하고 싶다.

포르투갈로의 이주를 결단하고 독일을 떠나기 전, 가까운 친지들에게 작별인사를 겸해서 이주를 앞둔 내 심정을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 나오는 시 ‘계단’을 빌려 전했다. “어느 곳에서도 고향처럼 집착해서는 안 된다/ 세계정신은 우리를 붙잡아두거나 구속하지 않고/ 우리를 한 계단 한 계단 높이며 더 넓히려 한다/ 삶의 한 계단에 머물며 슬퍼하자마자 우리는 곧 무기력에 빠진다/ 자리를 박차고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신을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임종의 순간에도 아마도 새로운 곳은 나타나리라/ 우리를 부르는 삶의 외침이 끝나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내가 16년 전 한가위 때 귀국했다가 예기치 못한 고초를 겪을 당시 독일 괴테문화원의 원장으로서 이를 참담한 심정 속에서 지켜보았던 슈멜터 박사는 나의 작별인사에 대해 요한 가브리엘 자이들의 ‘방랑자가 달에게’(1826)라는 서정시와 이에 곡을 붙인 슈베르트의 노래로 화답했다. “나는 땅에서, 너는 하늘에서 우리는 활기차게 돌아다니는데/ 심각하고 우울한 나, 온화하고 순수한 너/ 도대체 그 차이는 무엇인지/ 나는 이방인으로 이 나라 저 나라 정처없이 아는 사람없이 떠돌지/ 산을 오르내리고 숲을 들락거려도, 하지만 어디에도 내 집은 없네/ 너도 이곳 저곳 돌아다니고 수많은 나라를 유유히 거쳐 가지만/ 그래도 네가 있는 그곳은 너의 집이네/ 끝없이 펼쳐진 하늘이 너의 사랑하는 고향이라네.”

한가위의 밝은 보름달은 유럽 대륙의 끝자락인 이곳 포르투갈의 알가베도, 분단의 슬픔이 아직도 드리운 산하도 금년에도 어김없이 비추겠지. 희로애락이 서로 얽힌 인간의 삶을 생각할 때 단지 회한만을, 아니면 기쁨만을 남기는 작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넘는 경계선일 수도 있다는 긴장감은 있지만 꿈과 희망 속에서 나는 다시 경계선을 넘는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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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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