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러갔다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의아해진 적이 있다. 영화의 배경은 사람과 인간형 로봇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2049년인데, 영화 초반에 나오는 주방은 1990년대에 유행한 미국 시트콤 <프렌즈>의 주방과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과 인공지능 컴퓨터의 연애를 그린 SF 영화 <Her>에서도, 기후 변화가 심해지자 사람들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상황을 그린 SF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주방은 한결같았다. 현실의 주방도 기술 발전 및 사회 변화와 무관했던가 생각해보니 그렇진 않았다. 가스레인지 대신 전기레인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정수기 사용이 늘어났으며, 원룸이 증가함에 따라 세탁기가 빌트인되는 등 주방도 변하고 있다. 위 영화를 제작한 감독들은 탁월한 연출력으로 이미 여러 영화를 성공시킨 베테랑들이었다. 그런데도 왜 주방만큼은 시간을 비켜가게 그렸을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 경험의 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으로 주방을 표현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지만, SF영화 제작자들의 삶에서 주방은 중요한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뇌는 경험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며 변해가기 때문에, 경험된 환경에 능숙해지는 대신 경험의 틀을 벗어나는 내용은 떠올리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전문가라도 자신의 경험에서 중요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하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구글 홈이나 아마존 에코와 같은 인공지능 가상 비서가 집에 있으면 아이들의 버릇이 나빠진다고 한다. 인공지능 가상 비서에게는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며 예의를 지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가상 비서를 만든 개발자들은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전문가였겠지만, 아마 아이들의 버릇에 미치는 영향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보지 못한 미래를 생생하게 그려낸 영화감독들도, 주방이 자기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수 있다.

경험하지 못한 일을 염두에 두지 못하는 건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새 건물이면서 위치와 경관이 좋은 집은 비싸기 마련이어서, 대다수 사람이 위치가 좋고 오래되었거나, 새로 지은 멀리 떨어진 건물에 산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도시 외곽의 새 건물에 살다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교통과 경관이 좋은 오래된 집에 살게 되었다. 좀 불편한 점이 있어도 오래돼서 그러려니 적응하면서 잘 살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찬장이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어서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의외로 이런 경우가 제법 있었다. 문이 잘 닫히지 않는 등 이상 징후가 있다고 하는데, 낡은 집에 독특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보니 무엇이 위험 신호고, 무엇이 무던하게 넘어가도 될 불편인지를 구분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집주인도 빠르게 수리해 주었으나, 너무 놀란 터라 집을 옮겼다.

이 과정을 통해 낙후된 건물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알게 됐다. 찬장은 물론 세면대가 떨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위험을 감당하면서도 낙후된 건물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마도 경제적인 이유가 클 텐데, 다치게 되면 치료비가 걱정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행히 집을 옮길 수 있었지만, 그럴 형편이 못된 사람이라면 서럽고 무섭지 않을까.

인공지능이 기사를 쓰고, 작곡을 하는 시대다. 이족 보행을 하는 로봇이 공중제비를 돌고, 자율 주행차가 어느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물인터넷이 집과 도시를 바꿀 것이라고 하는 시대다. 그런데 찬장이나 세면대가 추락하는 것 같은, 갈릴레오나 뉴턴의 시대에 가까워보이는 사건은 엄청난 괴리감을 주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최첨단 기술은 그 장소에 없었고, 가난해서 훨씬 더 위험한 곳에서 사는 사람의 집에는 아마 정말로 없을 것이다. 재난 현장으로 들어가는 소프트 로봇도 필요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안전을 담보로 위험한 건물에 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에서 임대되는 건물 중 20년이 넘은 건물의 비중이 적지 않을 텐데, 이럴 때 인공지능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기술이 정말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통감했다.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의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할 수 있으리라는 점도 실감했다.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은 대체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지는 않을 테니까.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주방이 현실적이지 않고, 내가 오래된 건물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통감하지 못했듯, 사람들은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마련이니까.

■ 새로운 가치

오늘날 많은 사람이 당연하게 여기는 자유와 평등은 몇 세기 전에 발명된 가치다. 천년 이상 신분제도를 신봉하던 사람들이 십자군전쟁, 흑사병, 르네상스, 과학혁명 등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경험에 따라 형성된 사고의 틀을 깨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만들어냈다. 이 가치를 현실에 구현하면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만들어졌고, 이전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나은 세상이 되었다.

지금의 우리 앞에는 인공지능, 로봇공학, 유전공학, 나노기술을 비롯한 눈부신 기술이 있고, 그 기술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작용하지는 않는다. 빈부 격차와 주거 문제는 선진국에서도 심각한 문제이며, 지구 인구의 대부분은 중·후진국에 산다. 태풍과 가뭄이 극심해지는 등 기후 변화가 계속되고 있고, 물고기가 먹은 미세 플라스틱과 중금속을 우리도 이미 조금씩 먹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문제에 걸맞은 새로운 가치와, 내 경험의 틀을 넘어 다른 경험의 이야기를 전해줄 사람들과의 소통일지도 모르겠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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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