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햇볕도 좋고 바람도 좋은 가을이다. 날씨 좋은 주말 오후가 되면 고양이처럼 나른해지기 일쑤다. 하지만 아름다운 가을도 주중의 사무실 안으로는 찾아오지 않는다. 일에 쫓겨서 동분서주하다 보면 나른하던 주말의 고양이는 사라지고 없다. 참 신기하지 않은가? 뇌는 하나뿐인데도 상황에 따라 이토록 다르게 동작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 신경조절물질

뇌과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도파민, 세로토닌, 아세틸콜린 같은 단어를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단어들은 ‘신경조절물질’의 이름이다. 신경조절물질은 신경세포들의 활동 패턴을 조절함으로써, 뇌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도 뇌가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한다. 신경조절물질은 뇌 속의 특정 영역에 있는 신경세포들에서 생성되어, 뇌 속의 여러 곳으로 보내진다. 예컨대 도파민은 중뇌에서 생성되어 전두엽과 변연계의 여러 영역으로 분비된다. 이처럼 뇌 속의 여러 곳으로 두루 분비되기 때문에 신경조절물질은 몸 안팎의 상황에 맞춰 뇌의 전반적인 활동 패턴을 조율하기에 적합하다.

신경조절물질은 글루타메이트나 가바 같은 ‘신경전달물질’과는 다르다. 뇌 속의 특정 영역에서만 생성되는 신경조절물질과 달리, 신경전달물질은 뇌 전역의 다양한 신경세포들에서 생성된다. 또 표적 신경세포의 활동을 직접 흥분시키거나 억제함으로써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 신경세포의 신호를 전달한다. 이는 신경세포의 활동 패턴을 조정하는 신경조절물질과 다른 점이다.

신경조절물질은 ‘호르몬’이라고 잘못 불리기도 한다. 예컨대 도파민을 ‘행복 호르몬’이라고 잘못 부르는 경우가 있다. 호르몬은 몸의 한 부분에서 분비되어 혈관을 타고 몸 전체를 돌아다니다가, 이 호르몬과 결합하는 단백질 분자(수용체)를 가진 표적 기관에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인슐린은 췌장에서 분비되어 혈관 속을 돌아다니다가 간과 근육, 지방 조직에 있는 인슐린 수용체와 결합하여 포도당의 흡수를 촉진한다. 뇌 속에서 생성되고 분비되는 신경조절물질에 비해 호르몬은 활동 범위가 훨씬 더 넓은 셈이다.

■ 도파민의 다양한 역할

신경조절물질은 여러가지 작용을 한다. 예컨대 도파민은 학습, 동기, 충동, 탐험, 움직임, 선택, 위험 추구, 주의 집중 등 다양한 일에 관여한다. 도파민이라는 한 가지 물질이 이토록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첫번째 이유는 도파민이 여러 뇌 영역들에 분비되고, 이 영역들이 저마다 다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업 기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에서 도파민은 주의 집중에 관여하지만, 사건 기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에서 도파민은 기억에 관여한다.

이는 한 뇌 영역(예를 들면 전전두엽)에서의 도파민 활동이 다른 뇌 영역(해마)에서의 도파민 활동과 완전히 무관하다는 뜻은 아니다. 도파민은 생존에 필요한 보상(돈, 음식 등)이 예상될 때 분비된다. 보상을 잘 획득하려면, 보상에 관련된 정보에 주의를 집중하고, 보상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며, 보상에 관련된 내용을 학습하는 등의 활동이 필요하다. 도파민은 주의 집중, 움직임, 학습에 관여하는 뇌 영역들에 분비되어, 이 영역들의 활동이 보상을 획득하기에 유리한 패턴이 되도록 조정한다.

■ 같은 작용 다른 이름

도파민이 다양한 역할을 하는 두번째 이유는 도파민의 작용을 맥락에 따라 다르게 부르기 때문이다. 줄무늬체(striatum)의 도파민을 통해 좀 더 알아보자. 도파민의 분비를 받는 대표적인 뇌 영역은 줄무늬체인데, 줄무늬체에서 도파민의 농도가 낮아지면 움직임을 일으키기가 어려워진다. 파킨슨병에 걸리면 동작을 시작하기가 힘들어지고 움직임이 느려지는데, 이는 파킨슨병이 줄무늬체 도파민의 농도가 극도로 낮아질 때 발병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줄무늬체 도파민의 농도가 높아지면 움직임을 일으키기 쉬운 상태가 된다. 그래서 줄무늬체의 도파민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동기)과도 관련되어 있다. 재미있게도 줄무늬체의 높은 도파민은 지나친 쇼핑, 도박, 범죄처럼 충동적인 행동과도 연관된다.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동기와 나쁘다고 여겨지는 충동의 뇌 속 원리가 유사한 것이다.

실제로 동기와 충동에 대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연구들을 살펴보면, 양쪽 연구가 둘 다 도파민을 언급하고 있으며, 줄무늬체도 양쪽 연구에서 대체로 활성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줄무늬체의 도파민이 움직임에 관여하고, 동기와 충동이 둘 다 움직임을 일으키는 것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동기와 충동의 뇌 속 원리가 본질적으로 유사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렇게 보면, 뇌 속에서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일이 일어났는데도 어떨 때는 충동적이라고 표현하고, 어떨 때는 ‘추진력 있다/동기부여가 되어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비슷한 경우가 또 있다. 도파민의 높은 활동은 탐험에 대한 선호, 새로운 것의 추구, 위험을 추구하는 태도와도 연관된다. 탐험과 새로운 것의 추구는 진취적으로 느껴지고, 위험의 추구는 무모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이 세 가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활동이 탐험이고, 미지의 대상에 대한 탐험은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충동과 동기 사이 어디쯤

뇌 속의 동작 원리는 비슷한데도, 우리는 행동의 결과와 상황에 대한 해석에 따라 다른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참 묘하다. 빠르게 변해가는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숙고를 위한 시간은 종종 부족하고, 우리는 감에 따라 뭔가를 선택하곤 한다. 내가 내렸던 그 많은 선택들은 동기였을까, 충동이었을까? 지금 나의 선택은 무모한 위험일까, 진취적인 도전일까? 동기와 충동 사이, 무모함과 도전의 사이로 하루가 또 지나간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