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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숨]두 개의 글쓰기와 말하기

경향 신문 2021. 4. 5. 17:19

작은 스타트업 대표로 살아온 지도 2년이 거의 다 되었다.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코로나19 파고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전업작가로 살아가던 때와는 달리 나 혼자만 책임지면 되는 삶이 아니다. 그 무게는 짊어지고도 여전히 잘 가늠이 안 된다. 다만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여러 경험을 하면서 여전히 배워나가고 있다.

스타트업은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다. 어떤 회사인지, 무엇을 팔고 있는지, 그래서 이 사회에 어떤 선한 영향을 주는지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 지원서를 쓰는 일은 괴롭다. “작가 출신이어서 이런 것도 금방 쓰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도 이런 글쓰기는 해 본 적이 없었다. 모 스타트업 대표가 “탈모약 원천기술을 개발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면 아마 안 될 거예요”라고 한 말을 종종 떠올리면서 계속 지원서를 쓰고 있다.

스타트업이 드러내야 할 것은 대표의 역량이기도 했다. “저는 별 게 없는 사람인데요”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어서, 나는 나를 드러내는 데도 익숙해져야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스타트업이라면 모두 지원한다는 큰 공모사업에 지원했다. 단순히 지원서만 내면 되는 게 아니라 ‘AI 면접’도 보아야 했다. 세상에, 면접이라니, 게다가 AI라니. 나는 회의실을 빌려 자못 경건한 마음으로 면접을 보는 링크를 클릭했다. 곧 내 얼굴이 모니터에 나왔다. 면접을 시작하겠다고 하자 첫 번째 질문이 약 30초 동안 표시되었다. “당신에게 역경을 주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1분30초 내로 답하세요”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질문은 작가로서 초청된 자리에서 항상 받는 것이다. “작가님은 혹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이고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그런 질문은 대개 호감을 담은 표정과 말로서 나에게 도착하고, 시간제한 없이 답하면 된다. 게다가 내가 뭐라고 답하든 그들은 대개 “고맙습니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AI 면접은 달랐다. 저 너머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고, 표정이나 감정을 읽을 수 없고, 시간제한도 있는 것이다. 30초 동안 하나의 이야기를 떠올린 나는 그에 답해 나갔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줄어들자 내 말도 빨라졌고, 결국 “그렇습”하는 데서 녹화가 끝나고 말았다. 내가 면접관이라면 ‘부적합’ 도장을 이때 찍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책할 틈도 없이 “그 역경을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1분30초 내로 답하세요”라는 문장이 떴다. 아, 세상에, 나 이거 못 이겨냈는데. 아니, 지금이 제 역경의 순간입니다.

AI 면접이 끝나고, 전에 없던 자괴감과 함께 노트북을 덮었다. 나만 이랬던 건 아닐 것이다. 나와 닮은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아, 코로나가 아니라 내가 문제구나’ 하는 심정이 되어 일어나지 않았을까.

나는 그동안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살아왔다. 정확히는 그래도 되는 자리가 계속 요청되고 허락되었다. 어느 강의실에 가면 나의 책을 읽고 온 수십 개의 기대하는 눈과 귀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나라는 존재를 경청하고 내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신문·잡지에서도 당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라고 지면을 주었다. 이게 당연한 일이 아님은 알고 있지만, 이것이 반복되고 “강연이 좋았어요” “글이 좋았어요” 하는 말을 듣다 보면 결국 그 소중함조차 익숙해지고 만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한 개인에게 사치스러운 일인지 알 것 같다.

스타트업 대표로서 작가로서 동시에 살아가면서, 그리고 어느 쪽 삶에도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반대편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내게 허락되고 요청된 모든 것을 더욱 소중히 여기면서, 이 코로나19 파고를 잘 헤쳐가야겠다. 그 끝에 무엇이 남아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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