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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숨]지옥을 사는 맛

경향 신문 2020. 1. 31. 10:32

온갖 원통한 죽음들과 죽음을 각오한 채 한없이 길어지고 있는 투쟁 소식들로, 2020년을 우울감 속에 시작하고 있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무력감에 한 차례 더 쑥 빠져들게 한 것은, 지난 15일 선감학원 피해자 이대준의 사망 소식이었다. 

책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에는 이대준을 포함해 법적 근거도 없이 ‘부랑아’라는 이름으로 쓸어 담겨져, 어린 시절 선감도에서 뒤틀리기 시작해 평생 법망에 얽혀버린 피해생존자 9명의 생애 이야기가 구술되어 있다. 

섬을 탈출하려다 죽어 바닷물에 퉁퉁 부은 채 떠내려온 어린 동료들을 자기 손으로 묻어야 했던 소년 이대준은 자신도 15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다. 그가 선감학원대책협의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자녀들과 그 배우자들을 선감학원 현장에 데리고 간 당당한 피해생존자였다는 것이, 죄송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한국전쟁 민간인 피해,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등 국가폭력 피해 사건들의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과 최승우의 국회 앞 농성이 30일 현재 814일째 이어지고 있다. ‘법 집행권’을 놓고 윤석열과 조국을 앞세운 국가권력 내부 싸움이 국회로까지 번져 ‘법 제정’이 미뤄지는 동안, 법도 없이 9살에 끌려간 이대준은 ‘법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간장을 태우다 법 문지기들에 붙들려 63세에 간암으로 죽었다. 오살(五殺)할 놈의 법, 육시(六屍)랄 놈의 국가.

한편 외람되지만, 나와 동갑인 이대준의 죽음이 부러웠다.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벌어지는 갖은 불평등과 폭력을 넘어 전쟁과 인구문제와 기후문제에 이어 예측 불가능한 바이러스 확산 등의 결말은, 인류가 한바탕 싹쓸이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문제 자체보다 문제로 인한 혐오와 배제가 재앙을 당길 테고,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죽음에 휘말린다는 것과 숱한 생명들도 덩달아 죽는 것이 억울하지만 되돌릴 수 없지 싶다. 30대 후반인 아들 부부의 둘째 임신 소식에 입으로는 축하를 하면서도 내심 ‘무책임’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비관이나 염세가 아니다. 또래의 많은 청년들 입에서 “이런 세상에 노예 낳아줄 필요가 뭐 있냐?”는 말들이 넘치고 있다. 물질문명과 과학기술 발전의 폐해가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세상에서, 개인적으론 살아갈 날이 길게 남지 않았다는 것이 유일한 다행이자 버틸 힘의 근원이다.

피해자들의 말대로 선감학원과 형제복지원이 국가가 만든 아이들의 지옥이었다면, 그 바깥은 자본이 만든 지옥이다. 그리고 존 버거의 말대로 지옥이야말로 진정한 연대의 장소다. 고통의 자리야말로 성찰과 연대가 확장하는 현장이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가난은 그 자체로 생태적 삶이다. 쥐고 있는 것들을 통해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좇을 맛에 사는 인간들과 달리 지옥 같은 세상에서 우울감과 무력감에 휩싸여 있다면, 우리는 일단 옳고 좋은 편에 있는 것이다. 돈과 사람이 뒤집어진 세상에서 스스로 하늘 지옥에 올라 230일을 지내며 환갑을 넘긴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는, “차라리 철탑 위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영남대의료원 옥상 감옥에서 210여일을 고공농성 중인 박문진은 회복되지 않은 몸과 마음을 일으켜 100㎞를 걸어온 한진중공업 고공농성자 김진숙을 부둥켜안고 “고통과 절망, 외로움의 끝자락에 가본 사람만이 아는 내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다시 용기와 결의를 다짐한다”고 말했다. 어차피 지옥이라면 지옥을 사는 맛이나 더 배워야겠다. 죽으면 그 맛도 끝이니 더 살아봐야겠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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