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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숨]탈성장이 길이다

경향 신문 2020. 3. 27. 10:23

지난 23일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코로나19 사태로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 실물경제도 비상이라며, 경영계 요구를 담은 경제·노동 분야 40대 입법 개선과제를 국회에 제출했다. 

경제 분야 세부사항은 법인세 인하, 법인세 최저한세제 폐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및 온라인쇼핑 영업시간 제한의 폐지 및 완화, 기업 경영의 안정성과 영속성 확보를 위해 최대주주 의결권 확대, 상속세 최고세율 25%로 인하, 상속세 공제요건 완화 등이다. 노동 분야 세부사항은 탄력근로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 개선, 연장근로 허용 사유 확대, 해고 요건 완화, 사업장 내 시설점거 쟁의행위 금지, 쟁의행위 시 대체근로 전면 금지규정 삭제 등이다.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싸웠지만 계속 밀려온 노동권 관련 사안들 중 그나마 남아있는 조항들조차 코로나19를 핑계로 모두 없애버리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나 더 공고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주요 경제주체 초청 원탁회의’에서 손경식 경총 회장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정부가 기업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며 위에 나열한 깨알 같은 조항들의 요약을 건의하면서, 삶의 바닥이 무너지고 있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시급한 집행을 고대하는 재난소득지원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을 거라며 반대했다. 경총이 재난소득기금을 내겠다고 해야 할 판에, 이것이 인간(人間)인가?

지난달 칼럼 “코로나19, 미세먼지 ‘좋음’”에서 설명했듯 기후위기가 근본 원인인 코로나19 사태는 계속 반복될 것이며, 이는 이윤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경제성장과 개발지상주의로 치달려온 경제정치체제와 그 운영자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또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성과가 체제 내 권력자들과 이에 빌붙은 전문가 집단들에게 집중되고, 생계와 가족에 발목 잡혀 성장에 동원된 노동자들과 시민들에게는 제대로 분배되지 않은 채 불평등과 불공정이 대물림되어 왔다.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사회의 총체적 문제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아니 바로잡으라는 생태적 경고다. ‘오로지 성장’이 핵심인 자본주의의 폐해와 막다른 절벽의 실상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윤리 이전에 경제적인 차원에서도 더 이상 ‘성장’은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신성장’이니 ‘지속가능한 성장’ 따위 역시 이 절벽 앞에서 인간과 생태자원을 마지막까지 쥐어짜 이득을 챙겨보겠다는 발상일 뿐이다. 

이제는 경제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구조적, 정책적, 문화적 차원에서 ‘탈성장’의 경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추어서는 안 된다. 탈성장에 관한 담론과 실천들은 국내외에서 오래전부터 축적되어 왔으며, 우리 사회에서 아직 힘 있는 세력으로 모아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겪고 있는 녹색당의 혼돈은 더없이 가슴 아프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대혼란을 통과하며 다급하게 실험하고 있는 공공적 집행과 자발적 실천들을 평가하고 정리하면서, 혼란 너머를 만들어내야 한다. 경제와 정치는 물론 과학기술과 여가문화와 일상생활 모두에서 이전과는 다른 관점과 실천의 대전환이 절실하다. 문제는 대전환을 책임지고 만들어나갈 정치세력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조차 ‘쟤네가 원조 도둑놈’이라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궁창에 빠뜨린 두 날강도 보수정치 패거리들에게는 기대하는 바 없다. 탈성장의 경로를 책임 있게 만들어나갈 생태적 관점의 진보정치와 시민의 힘을 고대한다.

<최현숙 | 구술생애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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