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옛 동료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입사 만 20주년이라는 인사였다. SNS 댓글로 옛 동료들 몇몇이 더 모였다. 대부분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또 몇몇은 여전히 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다들 이모티콘으로 박수를 보냈다). 처음 넥타이를 맸을 때, 세기말이었다. 불안과 희망이 공존하던 때였다. 막 인터넷 콘텐츠 시장이 무르익기 시작할 때였다. 지금은 구시대의 유물이 된,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PC통신’ 회사에서 일을 했다. 콘텐츠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BBS라 불리던 게시판 글 하나하나가 귀했고, 가치 있었다. 그렇게 생산된 콘텐츠를 기획하고 관리하다가, 콘텐츠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옮긴 게 지금의 일이다.

그러니까 콘텐츠를 다루기 시작한 게 만 20년 됐다. 읽을거리, 들을거리, 볼거리 등 정보와 재미를 담은 ‘콘텐츠’는 20년 동안 제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꿨다. 색깔과 모양만 달라도 신선했던 텍스트 콘텐츠는 영상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면 구닥다리로 평가받는 시대가 됐다. 신문사의 일이 그렇다.

비록 뉴스 콘텐츠는 공짜라도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니, 콘텐츠를 돈 주고 보자는 결심을 한 게 몇 년 전의 일이다. ‘구독 경제’라는 산업에 편입했다. 카드 사용 내역서를 뒤져보니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계적 영화 드라마 콘텐츠 플랫폼 N사에 지불한 돈이 월 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없는 걸 보기 위해 국내 플랫폼 P와 T에 각각 몇천원이 또 들어간다. 음악을 듣는데 어쩌다 보니 2가지 서비스를 이용하게 됐다(아내와 같이 쓰는데, 동시 접속을 막아서다). 스트리밍서비스 B와 최근 열심히 광고를 하는 V를 쓴다. 둘은 사실 같은 회사, 대형 포털 N사의 서비스다. 이게 또 몇천원씩이다.

요즘엔 전자책 시장도 구독 경제 열풍이다. R사에 매달 몇천원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그래도 이전보다 읽은 책의 숫자는 확실히 늘었다. 일 때문에 미국 야구책을 읽으려면 미국 전자책 A사를 이용해야 하는데, 여기도 구독 서비스가 있다. 아직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해, 그때그때 사서 읽는다. 지난 1년간 4권을 사는 데 든 비용이 약 6만원인 걸 보니 이것도 구독 서비스를 신청해야 하나 싶다.

미국 야구를 봐야 해서 MLB TV 1년 사용권을 매년 결제한다. 13만원 정도 한다. 미국스포츠잡지 S와 E의 1년 온라인 정기 구독 이용료가 각 4만5000원 정도다. 새로 생긴 미국 스포츠 뉴스 온라인 유료매체 A의 1년 구독료가 약 7만원이다. 앗, 카드로 빠져나갈 때는 몰랐는데, 합해보니 연 80만원이 넘는다. 집에서 보는 신문구독료 2부는 넣지도 않았다. 옆에 있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추석이라 돈 쓸 곳도 많은데.”

그러고 보니 추석이 1주일 남았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곰곰이 생각하는데 거실 구석에 해마다 회사에서 추석선물로 보내준 스팸이 잔뜩이다. 그렇다, 한국 추석엔 역시 스팸이 아니던가. 콘텐츠에서 구독을 거쳐 추석을 지나 스팸에 도착했다. 돌고 돌았지만 길은 연결되어 있다. 20년 전이 세기말이었다면, 2019년은 더욱 암울하다.

가짜 뉴스가 문제가 아니라 스팸 뉴스의 시대인 게 문제다. 구독이면 끊으면 되는데 ‘공짜’라는 외피를 두르고 포털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쏟아진다. 인터넷 초창기, 요란한 제목으로 유혹하는 스팸메일 더미를 빼다 박았다. 메일 서비스 회사들은 너도나도 ‘스팸차단’ 버튼을 달았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역시 ‘스팸차단’ 기능이 필수다. 스팸뉴스는 뉴스 전체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치밀해서 친절한 뉴스는 스팸 더미에 묻혀 사라지기 일쑤다. 그러니 다들 덜 치밀해 덜 친절한 스팸생산 유혹에 빠진다. 

추석 밤, 휘영청 한가위 달에게 비노니 제발 포털에 ‘스팸뉴스 차단’ 버튼 하나 만들어주소서.

<이용균 스포츠부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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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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