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를 둘러싼 윤리적 논란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자율주행차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전방에 10명이 나타났다. 그대로 가면 행인 10명이 죽고 핸들을 틀면 차에 탄 1명만 죽는다. 무엇이 바람직한 선택일까? 이런 경우 대부분은 차에 탄 사람만 죽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사실 이런 문제가 자율주행차 때문에 새로 나온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장마철에 홍수가 나서 아버지의 고향집이 물에 잠긴 적이 있다. 비가 그치고 나서 가보니 집은 거의 2층까지 잠겼다. 댐의 물을 방류했다면 괜찮았겠지만 그랬다면 서울이 위험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사람이 많은 서울을 지키기 위해 시골이 희생하는 것은 불가피하지 않느냐고 생각하실 듯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중국 교민들을 수용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자율주행차의 논란에 비추어보면 인구가 적은 곳에 수용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자율주행차의 논란에서 10명 대신 1명이 죽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사람들도, 그렇게 프로그래밍된 차라면 사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10명 대신 1명이 희생해야 하지만, 그 1명이 나는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반대하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진천, 아산의 일부 시민이 반대시위를 했다고 해서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비난을 한다. 일부는 지역색, 정당색까지 들먹이며 비난하기도 한다. 최종적으로는 갈등이 잘 봉합되기는 했지만, 희생이 당연한 우리 사회의 구조가 바람직한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서울은 전국에서 가장 시설 좋은 병원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혹시 환자가 발생할지 모르니 서울공항에 내려 강남과 서울 일대의 시설에 이들을 수용한다고 하면 반대가 없었을까?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지방의 희생을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희생하지 않으면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구조가 더 잘못된 것이다.

서울의 집값을 두고 말이 많지만, 사실 서울의 집값이 비싼 것은 서울이 좋기 때문이며, 서울이 좋은 것은 많은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농담으로 서울의 집값을 잡을 복안이 있다고 말한다. 서울을 자족도시로 만들면 된다. 서울에 필요한 전기를 서울의 원전에서 생산하고, 쓰레기장도, 소각장도, 화장장도 다 서울에 둔다면 서울의 집값이 지금처럼 비쌀 이유가 없다. 물론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서울에 사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지방의 누군가에게는 싫은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명분으로 그런 비용을 충분히 지불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말이다. 보유세를 조금만 올려도 세금폭탄이라고 말하지만, 서울의 집값이 올라가기까지 들어간 공적 비용과, 서울의 일부 지역에 집중되는 자원을 생각한다면 지가 상승에 의한 이익만 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 때 논밭의 작물을 따가지 못하게 하자 시골인심 사납다고 비난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누군가 자기 집에서 돈다발을 들고 나오는데도 맘씨 좋게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텐데, 시골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시골을 기억 속에 박제하며 마음의 고향으로 두고 싶겠지만, 시골은 개발되지 않고 아름답게 남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시골에도 사람이 산다. 당신들과 같은 욕망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말이다. 서울이 누리는 아늑함을 위해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러한 주제를 자율주행차를 둘러싼 윤리적 논란처럼 힘겹게 고민하며 토론하고는 한다. 어렵게 고민하지 마시라. 당신은 지금 핸들을 어디로 틀고 있는가?

<이총희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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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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