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집에 불이 났다. 그것도 호떡집 주인이 낸 불이다. 바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호떡을 잘도 구워내더니, 오늘은 불났다며 난리법석이다. ‘김영란법’을 처리한 국회 모습이 딱 그렇다.

좀체 갈피를 잡기 힘들다. 그동안 위헌 소지가 많다며 제동을 걸었던 새누리당은 시민단체와 노조 등으로 그 대상을 넓히자고 나섰다.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그 대상에 포함시키는 데 앞장섰던 새정치민주연합은 그 반대다. 법안 심의의 최종 게이트키퍼를 맡았던 그 당의 법사위원장은 법률안 통과 하루도 안돼 위헌 소지가 있다며 손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야의 공수역전이다. 여당은 생색만 내고 야당은 북 치고 장구 치게 생겼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여의도 풍경이다.

정치판이 혼탁한 데에는 언론 탓이 크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교통정리라도 제대로 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이번에는 ‘언론’이 그 논란의 주인공이지 않았던가. 한국기자협회나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등 언론단체들이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됐을 때 분명하고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낸 언론은 거의 없었다. 국무총리 후보자가 ‘기자들도 한 번 당해보라’며 그 속내를 드러냈지만 언론의 저지선은 미약했다.

언론은 정치권이 여론을 의식해 졸속으로 처리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여론의 눈치를 본 것이 어디 정치권뿐일까.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응답률이 높았다. 물론 언론이 ‘자신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기 어려웠던 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기자실 문제’ 등에서 보였던 적극적인 투쟁 의지에 비춰본다면 뜻밖이다.

다수 언론이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되면서 언론 본연의 취재 활동에 제약이 따를 소지가 없지 않다. 검찰이나 경찰의 표적 사정도 걱정할 만하다. 언론인의 청탁이나 촌지 문제 등에 대해서는 언론 스스로의 자율 규제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어느 직역보다도 언론계야말로 지난 2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자정노력을 펴온 곳이기도 하다. 현업단체가 스스로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강력한 매체를 두고 있는 곳도 언론계 바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언론사를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포함한 것 자체를 금기시해야 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언론인을 대신해 헌법소원을 내겠다는 대한변협은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입법 대상에 언론인을 포함시킨 것은 졸속 과잉입법이라는 주장이다.

대한변호사협회 채명성 법제이사(오른쪽)와 강신업 공보이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러나 이번 법안 심의과정을 보면 꼭 그렇게 보기만은 어렵다. ‘공립학교 교직원은 그 대상에 포함되는데 사립학교 교직원을 예외로 하는 게 과연 온당한가’ ‘KBS·EBS 방송사 임직원을 포함해야 한다면 다른 언론사도 포함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언론에 대한 규제가 될 수 있으니 모두 빼야 하는 것 아닌가’ 등등 꽤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그 결론은 ‘공직기관’이 아니라, ‘공공분야(혹은 행위)’를 기준으로 삼자는 것이었다. ‘공직자’의 범주를 ‘공인’으로 확대시킨 것이기도 했다.

문제의 핵심은 김영란법 제정의 배경과 취지에 있다. 단지 공직자들의 부정과 부패만을 겨냥한 입법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의 ‘공적 영역’ 전반의 부패와 부정,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것인가. 만약 후자라고 한다면 그 적용 대상을 굳이 ‘공직자’라는 고정관념에 국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공적 영역’의 범위가 또 다른 쟁점이 되겠지만, 그것은 얼마든지 사회적 합의로 결정할 수 있다. 공적인 영역에 우선적으로 언론을 포함시킨다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니다.

되레 언론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 한 신문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을 포함시킨 것을 두고 ‘민간언론’에 대한 부당한 규제라는 주장을 폈다. 공영방송인 KBS나 EBS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국회 논의과정에서 슬그머니 ‘민간언론’을 집어넣었다는 것. 다른 신문도 ‘민간영역’인 언론까지를 그 적용 대상으로 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공영방송은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일 수 있지만, 신문이나 다른 방송 등 ‘민간언론’은 그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는 주장인 셈이다. 언론을 ‘공영’ 방송과 ‘민간’ 언론으로 구분하는 것도 우습지만, ‘민간’이어서 공적 규제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는 주장이야말로 사실은 언론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사기관의 표적 사정에 대한 우려도 그렇다. 부정한 청탁이나 금품 수수는 언론의 직업윤리로도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그 법제화가 자칫 언론에 대한 올가미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에 대한 언론의 경계와 자각이야말로 김영란법이 공적 영역 전반에 대한 부당한 족쇄가 되지 않도록 견제하고 방지하는 파수꾼 역할을 부여하는 것 아닐까. 언론을 인질로 삼은 위헌 논란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 공적 영역의 문화와 관행에 새 지평을 열어나가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겠다.


백병규 |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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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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