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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비평

[시론]대통령의 언어

경향 신문 2017. 2. 22. 10:23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을 두고 ‘선의’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말해 야권 지지층 내부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다. 안 지사는 반어법을 쓴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통할지 의문이다. 설사 통한다 해도 다른 문제가 남는다. 반어법은 대통령-혹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메타포’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비유의 언어’를 구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을 다룰 때, 그리고 행동의 방침을 결정할 때 특히 그러하다. 메타포란 기존 언어의 경계와 지평을 넘어 새롭고 다양한 의미를 창출하는 지적 실천이다. 인간은 이를 통해서 사건과 사람과 사물을 이전과 다르게 조명하고 조망할 수 있다. 이것이 신이 아닌 인간이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지구에서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리 ‘좋은 것’을 대통령이 써서는 안된다니, 도대체 왜 그렇단 말인가? 대통령은 ‘권력의 정수’이다. 그래서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 만큼 신중하게, 분명하게, 정확하게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듣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대통령은 학자나 소설가나 시인과 달리 말을 통해 의미를 창출하는 자가 아니라, (정책적·법제적) 행동을 끌어내 ‘의미를 구현하는 자’이다. 이 때문에 그의 말은 다수의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하며, 다수가 이해할 수 있도록 그 누구의 말보다 더 구체적이고 명료해야 한다. 평소의 소신과 상충해서, 또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려서 이리하기도, 저리하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봉착했을 때 오히려 더 그러하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2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4차 혁명과 미래인재’ 콘퍼런스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가상의 상황을 설정해보자. 테러범이 한 초등학교에 폭탄을 설치했다. 다행히 테러범을 체포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테러범이 어느 초등학교에 폭탄을 설치했는지 함구하고 있다. 그런 중에 폭발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런 때 정부 담당자들이 다른 방법이 없으니 고문을 해서라도 테러범의 입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들 중에서도 그에 동의하는 이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대통령은 이럴 때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평소 소신대로 테러범의 인권도 보장해야 한다는 마음과 생각으로 “고문은 패배자나 하는 짓이에요”라고 응답한다. 잘한 것인가, 잘못한 것인가? 어린이들을 소중하게 여겨온 터라 이렇게 응답하는 것은 또 어떠한가? “어린아이들은 미래로 가는 열차의 승차권이에요.” 잘한 것인가, 잘못한 것인가?

점수를 매긴다면 0점이다. 저렇게만 말했다면 그러하다. 저리 말하기만 한 자는 대통령을 할 자격이 없는 자이다. 저런 식으로 대처하는 대통령은 테러와 고문을 막을 수도 없고, 어린아이들을 구할 수도 없다. 아무런 행동 방침도 제시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고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정부 담당자들이, 그에 동의한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고문과 어린아이에 대한 평소의 소신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다.

“어린아이들은 미래로 가는 열차의 승차권이에요”라는 말을 갖고 고문을 허용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럼 이에 근거해 사람들이 실제로 움직일까? 움직이지 않는다. 대통령은 어린아이들의 의미에 대해서만 말했을 따름이다. 대통령은 책임지겠다는 의사를 정식으로 표명하지 않았다. 사람들, 특히 정부 담당자들은 대통령이 책임진다고 할 때 움직인다. 해석은 해석일 뿐이다.

이렇게 응답할 수도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테러를 없앨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세요”라고. 또 이렇게 응답할 수도 있다. “어린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세요”라고. 이 경우엔 어떤가? 사람들이 과연 움직일까? 역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테러를 막는 것을 혹은 지금의 위험에서 어린아이들을 구하는 것을 최우선의 일로 지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 담당자들은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을 분명히 정해줄 때 움직인다. 근본은 유예를 뜻할 따름이다.

대통령이라면 이리 응답해야 한다. “어린아이들을 구해야 하고 시간이 없으니 죽지는 않을 정도로 고문을 해서라도 입을 열게 하라”고. 아니면 “고문은 절대 안되니 어린아이들이 희생당할 우려가 있다 해도 인권을 침해해선 안되니 다른 방법을 쓰라”고. 그런 후에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담담히 기다리고 받아들이겠다 말하면 된다. 이것저것 다 감안해 비유의 언어를 구사하다가는 ‘모호함의 목책’에 갇혀 신뢰를 잃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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