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헌법학자인 로널드 드워킨은 상호 관심과 존중이라는 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을 정리한다. 미국 사회가 양극단의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모두가 “서로를 완전한 동반자로 여기며 스스로를 다스려야” 올바른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최근 통합진보당에 대해 위헌정당해산 청구를 한 것은 이런 민주주의의 요청에 대한 정면거부다. ‘진보적 민주주의’니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니 하는 정강·정책들을 북한과 연계시키면서 국민들의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한편, 아직 재판도 시작하지 않은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혐의 사건까지 끌고 와 우리 헌정질서가 위기상태에 처한 것처럼 극단의 논리로 일관한다.

실제 테러단체의 외곽조직이 아닌 한, 어떤 정당을 위헌정당으로 판단해 강제해산한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터키의 사례가 유일하지만, 이는 군부의 후견을 받는 정치세력이 그 반대세력을 탄압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유럽연합(EU) 가입을 향한 터키의 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게다가 터키는 이미 이를 반성하며 2001년부터 헌법 개정 등 정당의 자유를 보다 확장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단식농성 3일째(경향DB)

그래서 이번의 심판 청구는 세계적인 관심과 비판의 지점이 될 지경이다. 주지하듯 민주주의의 본체는 다양성과 다원성에 있다. 헌법을 공격하며 새로운 체제를 꿈꾸는 정당이라도 폭력을 앞세우지 않는 한 당대 정치의 동반자로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나아가 그에 대한 심판을 정당해산이라는 국가주의적 극약처방이 아니라 국민의 판단과 선거결과에 맡겨야 한다는 점은 ‘전투적 민주주의’론을 앞세우던 독일조차 합의하는 이 시대의 상식이다. 그럼에도 어설픈 종북논리를 앞세워 소수정파의 입을 막고 몸을 묶어 두고자 하는 시도는, 헌법재판소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적대개념으로 제시한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를 반복하는 반헌법적 행태가 되어 버린다.

이 지점에서 이 위헌정당해산제도가 4·19혁명 이후 정당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적 장치였다는 입법취지를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미약한 항변이다. 이 심판 청구가 위헌정당해산의 기본요건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당해산의 청구는 극히 신중하고도 예외적으로 제기돼야 하며 명백하고 결정적인 증거에 의해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심판 청구의 경우, 통합진보당의 정강·정책이 북한의 그것과 유사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증거와 논증의 전부를 차지한다. 내란음모 혐의와 관련한 RO(혁명조직)라는 모임의 실체와 통합진보당의 관계는 아직 제대로 다루어지지도 않았다. 이 사건이 국가기관의 광범위한 대선개입 의혹을 무마하기 위한 정치조작이라는 혐의를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흔히 이 사건을 두고 정치문제를 사법부에 떠넘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터키가 그러했듯, 법을 폭력의 대체물로 삼아 강압적 지배를 도모하는 권위주의적 통치의 전형적 수법이자 법치주의를 앞세운 눈속임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떠맡게 된 헌법재판소의 역할은 막중하다. 2003년, 내부정보원을 이용해 신나치주의를 추구하는 독일국민민주당(NDP)을 위헌정당으로 강제해산시킬 것을 청구한 사건에서 절차의 공정성과 정당의 보호를 이유로 심판 중단을 선언해 버린 독일연방 헌법재판소의 지혜는 이 점에서 우리 헌법재판소의 참조사항이 될 것이다. 이 제도는 활용하지 않을수록 좋은 것이라는 유럽의 일반상식을 재확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헌법재판소의 심판과정을 지켜보며 중립적이고 헌법합치적인 판단을 담보해 내는 우리 국민들의 부릅뜬 시선이 더욱 절실해진다. 통합진보당의 문제는 편향된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적 군사독재 체제가 왜곡해버린 우리 현대사의 산물이기도 하며, 이 점에서 그 대응은 정권이나 사법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시민사회의 몫이기 때문이다.

한상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