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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와 버스로 제주공항으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에 내려, 다시 대중교통으로 방송국에 도착할 때까지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발열 체크만 세 번을 거친다. 손에 알코올을 문지른 횟수가 오전에만 네다섯 번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여러 관문을 통과한 패널들과는, 비말이 오가는 토크를 어쩔 수 없이 진행한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평소보다 더 통제하고 더 생략하고 있지만, 최종 단계에서 ‘2m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업무가 있다.

그러니 코로나에 걸린다면 억울하다. 내 사례가 전문가들에게 ‘느슨해졌다’고 해석되어 주변에서 ‘제주에서 비행기까지 타고 가서 할 일이야?’라면서 빈정거린다면 속상할 듯하다. 전문가들이 기존의 틀을 바꾸라고 해서 엄청나게 협조했는데, ‘다 바꾼 건 아니니’ 나는 욕먹어야 할까? 글 쓰는 게 본업인 사람도 이 정도인데 사람을 만나야만 경제활동이 가능한 이들의 불안은 가늠조차 안 된다. 더 이상 쪼이는 게 불가능한 상황은 과연 느슨해진 것일까? 노골적으로 말해, 비대면 경제활동이 가능한 이들이 더 도덕적인 평가를 받을 확률도 높은 게 작금의 상황이지 않은가.

여기저기서 달라진 시대에 적응하라기에 나도 비대면 강의를 몇 번 진행했다. 집에서도 돈을 벌 수 있음에 기뻐했지만 끔찍했다. 내용 전달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나 때문에 가족들의 행동반경이 제한되는 폭력적인 상황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방에 감금이 되었고 아내는 반려견이 짖을까 봐 강제로 산책을 나갔다. 이건 가장이 일 마치고 집에 와서 식사시간에만 일장연설하는 수준보다도 못해졌다. 원격교육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학교 갈 때까지, 그리고 다녀오면 시작되는 양육이 이제는 일상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상황이 안 좋으니’ 누가 희생하여 부양자가 활동하고 누가 헌신하여 피교육자의 배움이 유지된다. 평소 같으면 따져봄직한 불평등의 순간인들, ‘상황이 안 좋으니’ 현재로선 침묵이 선이다. 예민한 한 사람 때문에 가족이 침몰해선 안 되니,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하기가 어렵다. 빌어먹을 ‘언택트’ 시대다. 서로 싫어도 가족이라 입 다물어야 한다. 집에 늘 사람이 있을수록, 여성들은 다시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 기존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활용한 적응이라, 그게 달라진 시대를 버티는 솔루션인가?

일상의 과부하가 걸린 이들의 스트레스는 확진자를 향한다. 공개된 동선을 보며 그가 평소 열 번 갔던 곳을 한 번으로 줄였는지는 상관없이 다그친다. 세 번 가던 카페를 한 번으로 줄인 이들은 자신의 노력만 보이기에 ‘카페에서 감염된 사람’을 혐오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스크 문제로 난동 부리는 이들이 있다. 종일 뉴스에 나오니 사람들은 평소의 짜증을 다 퍼붓는다. 하지만 사회가 뒤틀어진 지 8개월이다. ‘언택트’란 말만 부유하는 곳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절벽에서 붙잡을 가족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자들이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한 위태로운 사람들의 일탈은 또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연쇄폭발이 일어날 전조증상이다. 이를 예방하는 게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이어야 하지 않을까? 제발, ‘돈 많은 화목한 가정’에서나 가능한 미래 얘기는 그만하자.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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