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몇 주 전 이른 아침, 회사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뉴콘텐츠팀에서 다양한 월경용품을 소개하면서 ‘건강한 월경’을 말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한 사회적기업 ‘이지앤모어’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이를 접한 독자의 전화였다.

기사를 쓴 후배로부터 전해들은 통화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전화를 한 독자는 60대 남성인데 손주 가운데 하나뿐인 11세 손녀를 위해 생리대 외에 월경용품 박스를 사주고 싶다는 것. 지면 기사를 보고 연락을 했는데, 신문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업체의 연락처가 없고, 인터넷 주문은 할 줄 모르니 전화번호를 좀 알려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어머! 가족인 ‘남자 어른’으로부터 생리대 선물이라니.

그간 월경은 금기의 주제였다. 프랑스의 페미니스트이자 저널리스트인 엘리즈 티에보는 저서 <이것은 나의 피>에서 여성들은 임신 등 일부 기간을 제외하곤 평균 40년 동안 매달 5일간은 피를 흘리고, 지금 지구상에 8억명 정도가 월경을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월경은 은어로 불리며 금기시된다. 월경 대신 ‘생리적 현상’의 줄임말인 ‘생리’로 불리고, ‘그날’ ‘마법’이라고 에둘러 명칭된다. 

티에보는 회상한다. “물놀이를 하지 못했던 그 긴 나날이 생각난다. 탐폰을 넣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고, 패드는 다리 사이에서 커다란 공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해변에서 옷을 반만 입고, 불행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이 수영하는 것을 지켜보며 머물러 있었다.” 동서고금의 ‘티에보’들은 다들 공감할 이야기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꽁꽁 감싸고 숨기는 것이 여성에게 부여된 그래야만 하는 태도였지만 이제 생리대를 살 돈이 없다는 고민도, 여성의 몸에 건강한 생리대를 사용하고 싶다는 욕구도, 다양한 월경용품을 골라 쓰고 싶다는 선택권도 적극적으로 표출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된 이지앤모어의 안지혜 대표는 “‘월경’이라는 이름을 찾아주고자 한다”고 했다.

이런 세상인데 감싸고 싶은 몸을 억지로 드러내야 할 처지로 몰리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지난 9월9일부터 농성을 벌이고 있는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대다수가 여성인 이들은 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김천 본사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경찰의 강제진압 시도에 이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상의를 벗어던졌다. 박순향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부지부장은 “저희가 할 수 있는 ‘내 몸에 손대지 마라’라고 외쳤다. 누가 외쳤는지 모르겠지만 ‘벗자’라는 단어에 우리는 벗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궁지에 몰려 눈물로 상의를 탈의한 여성들에게 쏟아진 건 가혹한 시선이었다. 58개 시민단체가 국가인권위에 낸 진정서를 보면 강제연행에 항의하기 위해 여성 노동자들이 상의를 탈의했을 때 경찰과 사측이 촬영을 하고 비웃는 일이 있었다는 내용도 담겼다.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의 몸을 드러냈다는 뉴스에 달린 댓글들은 입에 담기조차 어렵다. ‘중년 여성’이자 ‘노동자’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가 담긴 멘트들에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자발적인 탈코르셋 운동이 벌어지는 시대에 누군가는 최후의 수단으로 옷을 벗어야 하고, 그 행위마저 조롱당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렇게까지 세상이 나아졌구나’ 싶다가도 ‘아직도 세상은 이 지경이냐’ 싶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지만 그 흐름 속에 오히려 휩쓸려 버린 이들도 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힘이 없는, 억울한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에게, 참사 2000일을 넘기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산업재해로 쓰러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보이지조차 않는 난민 신청자와 이주노동자들에게, 생활고에 시달린 탈북 모자와 송파 세 모녀에게, 장애인과 성소수자들에게….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