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이사를 오고 크게 달라진 것 하나는 관공서에 드나들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서른 몇 해 동안 서울에서 관공서에 갔던 모든 횟수보다 하동에 내려와 관공서에 간 횟수가 훨씬 많았다. 면사무소와 군청과 농업기술센터와 보건소와 농산물품질관리원 같은 곳들. 면사무소 직원은 온 마을 사람들 얼굴을 알고, 사람들은 해마다 올해 관에서 일을 어떻게 하는가에 신경을 기울인다.

지방으로 내려와 살면서, 별정직 공무원으로 문화행사를 치러낸 이가 있었다. 그는 지역 유지가 노골적으로 몇 사람을 지정해서 꽂아넣거나, 그런 상황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공무원에 대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다. 결국 그는 정해진 기간을 다 채우지 못했다. 늘 해오던 관습에 대해 문제가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오래 버틸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지역 사회의 규모가 작아서인지, 그런 일들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어디에서나 눈에 띈다. 논이었던 땅에 어느 날 갑자기 과일나무가 벼처럼 빼곡하게 심긴 다음해에 그 땅이 도로로 수용이 된다거나(나무그루 수마다 보상을 받는다.), 한 해에 2주쯤 관광철에 교통량 조사를 해서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토목 공사를 벌인다거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지역의 상징 조형물 같은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말 글자 그대로 상징이어서, 빙하 꼭대기와도 같은 상징물 아래에, 다크웹 같은 세상이 펼쳐져 있다. 언젠가는 지역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신청하는 사람이 창구 직원에게 선물을 건네는 것도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저 아는 사이에 선물을 주는 것인 줄로 생각했다.

관청과 가까운 삶이어서 그럴까. 이명박 시절에 내려와서 박근혜 정부까지, 이런 일들은 점점 버젓해지고 더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았다. 지방자치라는 것이 지방의 토호와 관청의 어긋난 관행을 제도로 뒷받침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어른들은 ‘나서기’라고들 하셨다.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이들이 지방의원을 하고, 지역의 여러 기관 자리를 도맡는다. 사람을 때리고, 욕하고 했던 예천군 군의원들은 제명을 당한 다음, 그걸 취소시켜달라고 소송까지 했다. 이 군의원들이 유별난 경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소문은 금세 퍼지고,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 누군가가 또 누구와 어떤 사이인가 하는 것도 알려진다. 그러고 나서는, 그런 일을 벌인 사람이 공적인 책임을 지거나, 처벌을 받는 경우는 적다. 국회의원쯤 하는 사람이라면, 수사를 하는 지역 경찰서에서 현장에 가 보는 일도 없이 수사를 끝내는 일도 벌어진다. 그것은 지방의 검찰과 법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들리는 말로 판사는 서울까지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한직이고, 검사는 관할 지역의 규모가 작을수록 한직이라고 한다. 지방에서 일하는 것을 두고, ‘한직’과 ‘좌천’과 ‘영전’으로 설명하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란, 좌천되어 한직을 떠도는 사람들의 법치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이다. 지방의 비리가, 그것이 저질러지는 방식이 꿈쩍 않고 있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조국 장관의 사퇴 발표가 있고, 가슴이 찢어진다는 한 작가의 말을 보았다. 집어든 책에서는 ‘생나무가 빠개지는 것 같다’는 글귀도 들어왔다. 그리고 암전. 지난달에 아이들과 서초동 집회에 다녀온 뒤로, 스스로 품었던 마음들을 찬찬히 되짚어 봐야 했다. 엊그제 19일, 서초동에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고 한다. 앞으로도 서초동 검찰 앞에서 주말마다 사람들이 마음을 모은다고 했다. 간절한 만큼, 서로 즐기며 북돋우는 자리라고도 했다. 생나무가 빠개진 자리에, 다시 어린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었다.

<전광진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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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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