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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시선]커피 볶는 사람의 입맛

경향 신문 2019. 6. 3. 11:24

커피 이야기를 들었다. 지인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서 커피를 볶는다고 했다. 봉지 커피를 끊은 다음, 맛있다는 커피집을 찾아다니다가, 볶은 콩을 사서 갈아 마시고, 지금은 생커피콩을 들여서 볶고 있다고. 처음에는 다 같은 커피인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이태 전부터 주로 마시는 것은 한 커피 농장의 것을 정해 놓고 마신다고 했다. 그는 그 농장의 커피가 올해 것, 작년 것, 재작년 것이 또 다르다고도 했다. 이야기는 같은 원두를 볶을 때마다 커피콩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그걸 갈아서 내리는 순간에 맛은 또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하는 데에 이르렀다.

커피콩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줄기에서 가지치기를 하고, 잎을 내고 나중에는 잎맥을 따라 가장자리 톱니 하나하나에 맺혀 모두 다 다름에 이르는 것이었다. 모든 과정에 갈림길이 있고, 어느 갈래에서 갈라지건 둘은 서로 다른 커피가 된다. 듣고 있으니 그 모든 걸 ‘퉁쳐서’ 커피라고 불러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날마다 다른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늘 바쁘고, 일할 때는 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어쩌다 가끔, 자신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에는 쉬는 법이 없었다. 커피를 볶아서 마시기는 하지만, 혼자 사는 집에서 밥을 해 먹을 여유도 없었고. 그가 자신의 사랑스러운 커피들을 칸칸이 다른 서랍에 하나씩 넣어두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시골에 내려와서 농사를 지은 한 해 한 해가 떠올랐다.

볍씨 종자를 고르는 것부터, 거름을 어떻게 마련할지, 못자리에 물은 얼마나 대야 하는지, 풀은 어떻게 매고, 타작을 해서 갈무리할 곳간을 관리하는 것까지. 모든 과정마다 서로 다른 방법이 놓여 있었다. 일머리가 다른 이웃들마다 일을 해내는 방식도 다르고. 게다가 남들 하는 것하고는 다르게 농약이나 화학 비료는 쓰지 않겠다고 시작했으니, 하는 일마다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른 것이 넘쳤다. 당연히 해마다 밥맛도 달랐다. 논은 겨우 두 ‘도가리’(토막)였는데, 심지어 같은 해 타작한 것도 위쪽 논 다르고 아래쪽 논 다르고 그랬다.

그런데 커피든 다른 농사든, 대규모로 생산되고 판매되는 것들은 이런 차이를 지워서 뭉개는 방식으로 제품을 만든다. 언제 먹든, 어디에서 사서 먹든 늘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도록. 쌀이나 밀가루를 아주 하얗게 깎아서 백미, 백밀가루로 만드는 것도 이런 까닭이 있다. 그가 커피를 막 볶기 시작했을 때에는 어떤 기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잘못하거나, 놓쳤던 무언가를 채우면 한결같은 맛을 낼 수 있으리라고. 그러던 것이 해가 가고, 날마다 다른 커피라고 여기게 되고부터는 맛이 다른 것을 즐기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 농사를 지을 때,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쓰지 않겠다고 했던 것은 그것이 옳고,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농사가 늘어 밭에서 여러 채소들을 가꾸고, 한 그루씩 과일나무를 심고, 닭을 키우기도 하고, 차도 만들면서, 유기농이나 자연재배와 같은 방법을 좇아 농사를 짓는다. 맛이 좋기 때문이다. 해마다 다르지만, 늘 감격하게 되는 맛.

다음에 다시 그를 만나면 우리집 농사 얘기를 좀 늘어놔야지. 그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대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농사짓는 것부터 따져서 재료를 구하고 손수 해 먹었다면, 커피를 맛보는 입맛이 열리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했겠지. 그러면 농사와 또 거기에서 나오는 먹을거리에 대한 이야기도 더 잘 알아들을 것이다.

우리집은 논에 이모작 농사를 해서, 지금은 토종밀이 자라고 있다. 며칠 지나면 타작을 한다. 볕에 널어 말리고 밀가루를 빻으면, 해마다 씨를 받아서 심는 것이지만, 여느 해와는 또 다른 밀가루가 나오겠지. 햇밀로 빵을 구워서 아이들과 먹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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