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엄마랑 하는 말을 엿들은 유치원생 꼬마. “아빠는 내가 무슨 반인지도 몰라. 근심반 걱정반 아니라고요. 나 달님반인데 나한텐 관심도 없어요. 우우~” 귀여미 꼬맹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마음 편할 날 없지. 이게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걱정보따리는 배나 더 클 뿐. 

가을이 되면 시인들은 부쩍 ‘센치’해져서 슬픈 시들을 낳고는 한다. 시도 이를테면 시인에게는 자식이나 마찬가지. 자기 시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걱정만 한가득이다. “헤아릴 수 없는 절망, 불만, 환멸을 겪어야 나오는 것이 한 줌의 좋은 시. 시는 말이지 아무나 쓰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나 읽는 것도 아니라네.”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에 담긴 ‘시’라는 시가 시답잖은 내 시를 쏘아본다. 솔직하고 담백한 시집을 읽다보면 주눅이 든다. 

시 공책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좋은 문장이나 낱말, 이야기를 발견하면 기록해둔다. 아이가 밥은 먹었나 걱정하듯 내 시가 앞뒤 제자리를 틀고 앉았는지 한번씩 요리 보고 저리 본다. 목사들은 가끔, 또는 자주, 설교를 하게 되는데 설교문도 엄청 신경을 써야 한다. 아니면 모두 실망하거나 푹 깊은 잠을 주무시게 되니깐. 나도 담임목사 노릇을 할 때는 일주일 내내 설교문을 끙끙대며 썼다. 교인이라야 할머니들뿐이었으나 신경을 써야 한다. 할머니들은 예수님과 부처님 차이를 잘 모르신다. 두 분 헤어스타일이 좀 차이가 나긴 하지. 

교회 다니기 전엔 절에 다니셨던 분들이라 왔다리 갔다리 불경과 성경이 머릿속에서 잡탕으로 오고 간다. 목사가 눈을 감고 기도하면 교인들은 휴대폰을 몰래 열어보고, 목사가 설교하면 교인들은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존다. 예수는 자식 대신 제자를 낳았는데, 모두 틈만 나면 곯아떨어졌다. 광화문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정체 모를 목사와 교인들만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나라 걱정. 걱정도 팔자이신 분들이렷다. 그러다가도 헌금은 기어이 걷더구먼. 결국은 먹고사니즘. 시인의 계절 가을엔 근심걱정이 커간다. 고엽의 가로수길 우울도 쌓여간다. 한 줌의 좋은 시가 나오려고 산고를 치르는 중이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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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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