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신안군에 가면 1004라는 숫자가 돋보인다. 일공공사가 아니라 천사로 읽고 天使로 이해해야 한다. 이 지역의 크고 작은 섬을 통칭하여 1004개라는 것. 그래서 이곳은 천하에서 유일한 천사의 섬이라는 것. 최근에는 천사대교가 개통되어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등이 뭍에 직방으로 연결되었다. 이제 목포에서 발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저 천사들의 발치에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날씨가 유난히 변덕스럽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막무가내의 추위가 산하를 휩쓸고 있다. 식물에 각별한 애정과 깊은 안목을 지닌 분들과 봄맞이 꽃산행에 나섰다. 무안 톱머리해변에서 일박하고 김대중대교-천사대교를 지나 자은도 두봉산에 올랐다. 최근 뭍의 산에서는 진달래(너마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겠더냐, 진달래!)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꽃이 없었는데, 섬의 산은 올해의 봄을 한껏 포옹하고 있었다. 기분이 한껏 꽃에 취하려는데 한술 더 뜬다. 하늘에서 부드러운 사신이 도착한 것이다. 객쩍은 환영사도 작성해 보았다. “아무것도 없어 텅 빈 줄로 알았는데/쌓인 말이 저리도 많았구나//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두봉산을 종주하고 내려오니 벚나무가 활짝 피었다. 그 아래 작은 정자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때는 마침 점심 무렵이라 하루 중에서 가장 긴요한 시간대이다. 허기를 달래는 사람, 젖은 몸을 말리는 사람, 등산장비를 점검하는 사람, 동무들을 찾는 사람. 마치 산중에 도깨비시장이라도 반짝 열린 듯하다. 벚나무 꽃잎에 폭 싸인 저 알록달록한 풍경을 세 줄의 문장으로 이렇게 묘사해 볼 수도 있겠다.

하늘에서 떨어진 비는 구르고 흘러 바다로 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벚나무 가지를 뚫고 나온 꽃은 비바람에 찢겨 떨어졌다가 도로 흙으로 돌아간다. 착륙하는 빗방울과 흩날리는 꽃잎의 중간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 그대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에 머무르다 또 어디로 가는가. 벚나무, 장미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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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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