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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신춘문예와 장르

경향 신문 2020. 1. 2. 14:29

이젠 2020년이 왔고, 신춘문예 심사를 마친 선생님들은 심사평을 송고한 후 쉬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몇 년 사이에 가득했던 사고들과 대체 매체들의 확장으로 문학이 왜소해진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신춘문예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문청들은 문학의 자장 안에서 여전히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으니까요. 올해 키워드가 퀴어와 SF, 비인간 캐릭터 등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오늘 이렇게 지면을 빌려 펜을 든 것은 기사를 보고 든 한 가지 우려 때문입니다.

선생님. 장르의 코드를 비평할 때 게으르게 비평해 놓으신 건 아니겠지요. 다른 문학을 비평하듯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치열하게 고민해주셨겠지요. 제발 그러셨으면 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장르를 가르칩니다. 이것은 20살, 처음 판타지 소설 작가로 데뷔했을 때부터 제 오랜 꿈이었습니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한국 판타지 소설에 대한 공부를 했고 논문을 썼지요. 제가 이런 꿈을 갖게 된 까닭은 데뷔 당시 장르문학을 쓴다고 무시 받았던 기억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따위 것은 문학이 아니라며 일갈하는 선배부터, 이제는 등단을 해야 하지 않겠냐며 ‘제대로 된 코스’를 권유하던 선생님이나 주변부 공부만 하고 중심 공부로 들어오지 않는다며 호통을 치던 선생님, 그리고 대학원에 가면 판타지 소설 출간한 ‘부끄러운’ 기록을 삭제하고 아닌 척 지내라던 친절한 조언까지. 그런 말들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맞서 싸우고 싶었거든요. 판타지 소설의 가치와 근거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요.

동년배의 장르 연구자는 저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사람이 많습니다. 외환위기 직후 급격하게 늘어난 대여점에서 만화책과 소설책을 보며 꿈을 키워온, 동시에 자신의 취미와 취향이 타인에 의해서 부정당했던 동료들이 인정투쟁을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한국에 대중 상업 장르문학이 부흥한 것도 벌써 20여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10대들은 이제 30~40대의 나이가 되었고, 사회 각층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강단에 있으면서 한 해 한 해 인식이 바뀜을 느낍니다. 특히 2019년은 장르문학의 인식과 토대가 크게 전진하는 해였습니다. 웹소설 시장은 더욱 커졌고 SF 무크지가 나왔으며 해외에 수출되는 작품도 많아졌지요. 이론서나 비평서가 두 자릿수 이상으로 출간되었고 이 분야의 연구도 누적되었습니다. 좋은 작가분들의 이름이 뚜렷하게 가시화되었죠.

하지만 문학만큼은 이러한 흐름에 계속 더디더군요.

몇 달 전 한 학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발제자가 장르문학이 받는 차별적 시선을 분석해 발표했더니 분기에 찬 한 청중이 어딜 장르문학이 대접받길 원하냐면서 일갈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대접해 달라는 말이 아니라 차별적 시선을 거두어 달라는 것이었는데 말이지요.

은폐된 차별도 많습니다. 저도 비평을 공부하다 보니 문학의 장에서 ‘비평’이 어떠한 형식으로 진행되는지를 배웠습니다. 작가의 기존 작품을 검토하고, 비슷한 소재나 주제의식을 두고 특이점을 찾고, 계보를 이야기하죠. 그런데 문학에서 장르를 비평할 땐 이런 절차가 종종 사라집니다. 조금만 과학기술이 들어가도 소재에 대한 고민은 넣어두고 새롭다는 말, 낯설다는 말로 평가를 유보하지요. 이제 먼 곳에서 인정받기를 위해 투정부리던 아이들은 없습니다. 다들 인정투쟁의 장에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죠. 이러한 게으름을 지적할 때마다 들려오는 이야기가 “대접받으려 한다”이니 장르의 팬들은 ‘신춘문예에 장르가 나왔고, 인정받았다!’라는 생각보단 ‘진짜 모르는구나’라는 허무감과 허탈함, 그리고 분노를 느낍니다.

융복합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시대입니다. 장르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심사자가 되어서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지금, 모르는 분야는 충분히 협업하고 맞춰갈 수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 올해의 심사평은 부디 게으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작은 우려였습니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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