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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실업급여, 달콤한 그 맛?

경향 신문 2021. 1. 28. 09:39

작년 한 해 계약직으로 살면서 첫 칼럼 제목은 연말부터 정해뒀다. 그 이름도 빛나는 4대보험의 테두리 안에서 일한 건 서른 살에 기초생활수급제도에서 ‘탈수급’하고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류상 ‘근로의지가 없다’ ‘근로능력이 없다’고 평가받은 부모를 뒀다. 사적 안전망일 수 있었던 양가 조부모는 일찍 사망했다. 형제 관계는 여동생 하나, 남동생 셋. 누구의 격려도 지원도 없었지만 서울로 대학을 왔다. 그때부터 가능한 한 벌어야 했다.

동시에 내 소득은 ‘걸리면’ 안 됐다. 어머니가 공무원에게 사정해 겨우 들어간 기초생활수급에서 잘리면 의료비도 감당 못하고, 많은 동생들 중 누군가 또 대학에 가게 되면 소득 장학금이나 저금리 대출을 못 받아 모두의 인생을 망칠 거라 생각했다. 4대보험 안 되는 일거리를 찾아다니며 나를 부양했다. 수업보다 일이 먼저였다.

이런 일거리들은 몹시 ‘불량’했다. 부당한 취급은 그렇다 치고, 일을 못하면 수입도 바로 끊겼다. 여러 수입이 생활을 지탱하도록 더 많은 일거리를 테트리스하듯 시간표에 구겨넣었다. 아파도 병원에 잘 가지 않았다. “너는 맨날 일만 하네?” 자주 듣던 소리다. 이번 취직 전 취미란 걸 가진 프리랜서가 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새 일을 하며 가장 놀란 건, 한 직장에 이렇게 긴 시간을 쓴다는 것이었다. 시급 생활하며 시간을 돈으로 계산하는 데는 도가 텄는데, 이 일은 통근 15시간, 식사 5시간을 포함 주 60시간을 헌납할 것을 요구했다. 너무 길었다. 생활과 주변을 돌보고, 취미생활을 하고,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충분히 읽기가 어려웠다.

월급 하나에 의존하는 게 불안하기도 했다. 그럴 때 실업급여란 달콤한 약속을 떠올렸다. 고용보험 가입일수 180일이 넘는 순간 월급을 잃어도 국가가 잠시 생활비를 메워 준다니, 꿈같았다. 계약 반 년이 지날 때부터 고용보험 홈페이지의 실업급여 계산기를 종종 두들겨 봤다. 생활비치곤 적지만, 단기 일거리로 보충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연말, 재계약 불가 통보 후에도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었다.

새해 첫 월요일이 되자마자 설레며 서부고용노동센터로 향했다. 170명. 압도적인 대기인 수였다. 코로나를 걱정하며 기다리다가, 직원이 초스피드로 안겨 주는 종이쪼가리를 받아 떠밀리듯 센터를 나왔다. 이럴 수가. 읽어 본 자료는 일단 너저분하고, 다음으로는 위협투성이였다. 국가가 정해놓은 구직활동만을 꼭 해야 한다, 무슨 일이라도 하면 그만큼 급여를 깎고 숨기면 잡아내 고소하겠다는 내용들. 부푼 마음은 오간 데 없었다.

신년 과제는 시급 7517원 받아 살아남기가 되었다. 실업급여는 사회안전망이 아니고, 감히 장시간 노동 울타리 밖으로 나온 것에 대한 징벌 같은 것일까? ‘정상가족’의 사적 부조가 있었다면 아무래도 괜찮았겠지만.

취업희망카드 표지엔 이렇게 적혀 있다. “신념이 있는 한 반드시 기회는 있습니다.” 20대 내내 국가는 나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이제 실업급여를 떠올리면 쓴맛이 떠오른다. 인생의 쓴맛, 아니, 대한민국 복지제도의 쓴맛.

홍혜은 페미니스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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