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 멱살 잡힌 사람의 몸. 아무리 고급한 생각을 한다 해도 밥 한 톨 삼키지 못한다면 그것을 건사하기가 난망이다. 기생(寄生)이란 말을 굳이 해야 하랴. 항산이라야 항심이라고 했다. 삼시세끼. 이보다도 더 일상을 좌우하는 게 달리 없으니 몸의 안팎이 다 같다. 오죽했으면 삼식이, 라는 참으로 모멸스러운 별명이 등장했을까. 

어디에서 오는지 도무지 그 정체를 모르겠는 시간이 흐르고 이윽고 배꼽시계가 뻐꾸기처럼 울었다. 또 도래한 점심. 이번 끼니는 출판도시 내 옥호도 사뭇 다정스러운 ‘곰씨부엌’으로 정했다. 곰처럼 우직한 분들이 묵직한 국물을 끓여낼 것만 같은 식당.

좋은 식당은 배고픈 손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이내 가슴살을 잘게 저민 닭곰탕이 나오고 숟가락을 집었다. 첫술이 들어가고 들척한 국물이 목울대를 휘젓고 내려갈 때, 옛날 생각이 거슬러 올라왔다. 참새 새끼처럼 짹짹거리는 여섯 개의 입을 달래느라, 그 간단없는 삼시세끼를 감당하느라 고단했을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윽고 허기가 다스려지고, 국물이 바닥을 보일 무렵, 숟가락을 그릇에 걸쳐놓는 여유도 찾았다. 그렇게 천천히 음식을 씹으면서 자연스럽게 바깥의 풍경을 내다보다가 아, 퍼뜩 알게 되었다. 

‘곰씨부엌’ 앞마당의 울울한 나무. 6월의 푸르른 신록이 도드라지는 벚나무들. 그들이 식당을 환히 쳐다보고 있지 않겠는가. 통유리창 바깥은 생생한 현실이다. 바람이 불고, 그 바람에 닿은 나무들이 흔들리고, 그 흔들리는 나무에 잎사귀가 춤을 추는 곳이었다. 나처럼 빈틈없는 몸을 가진 나무들을 보다가 새삼스럽게 알아차렸다. 나무들도 식사 중! 이 환한 햇빛 아래로 소풍 나온 듯! 

입안이 씰룩거릴 때마다 정확하게 리듬을 맞추며 흔들리는 벚나무 가지들의 동작. 목구멍 너머로 꿀떡 삼킬 때면 더 크게 끄떡이는 잎사귀들의 움직임. 그것은 나의 저작운동과 때맞추어 궁합을 맞추는 나무들의 식사법이 아니겠는가. 뭐, 그런 생각도 해보면서 벚나무 옆에서 벚나무와 함께 또 한 끼니를 때운 하루. 벚나무. 장미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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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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