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섬은 없고 물에 빠진 닭이 있다. 난처한 사정이 아니다. 점심시간에 닭백숙집에 왔다는 이야기이다. 오늘은 어떤 모임이 있다. 상을 잇대어 붙이고 미팅 대열로 나란히 앉았다. 단순한 점심이 아닌지라 여러 사람들의 말로 일순 식당이 시끌벅적해졌다.

구규(九竅)는 몸에 뚫린 아홉 가지 구멍을 말한다. 구규가 있기에 인체는 외부와 소통하고 연락하면서 겨우 유지·건사한다. 

하부의 것은 그렇다 치고 상부에 난 건 주로 얼굴에 집중되어 있다. 눈 하나가 뒤통수에 달리면 사방을 두루 꿰지 않을까. 일견 더 나은 조건일 수도 있겠지만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가듯 그건 부작용이 많은 게다. 그러니 차라리 한쪽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몰두하라는 함의로 나는 이해한다. 

한편 얼굴에 모인 일곱 개로 생각이 뻗어나가다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사실 해부학적으로 콧구멍은 겉으로만 두 개일 뿐 실은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어디에 있을까? 입은 두 개로 간주해야 한다. 말하는 구멍과 먹는 구멍.

모처럼 소임을 만난 나의 입은 토실한 토종닭의 육질을 실컷 즐겼다. 다음은 또 다음의 기관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런저런 구규에 관한 실없는 생각과 함께하면서 점심을 끝냈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말은 먹이를 찾아간다. 사람들 사이에 먹을 게 떨어지면 대화도 금방 시들해진다. 이윽고 나는 섬을 퐁당퐁당 떠났다.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 참석한 사람들과 일일이 마당에서 악수하고 헤어졌다는 이야기.

불룩한 배도 꺼줄 겸, 차를 버리고 심학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산 너머 출판도시의 사무실까지 걷기로 한 것이다. 산 초입의 약천사 돌화단에 영산홍이 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추위에 아직 꽃망울도 보이지 않는 작은 나무들이다. 그 아래 누군가 나무팻말을 세워놓았다. 자세히 보니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깨알같이 적어놓았다. 영산홍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예용 나무다. 거룩한 불심을 보살피는 나무판으로 인해 오늘의 영산홍은 퍽 달리 보였다.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 반야심경의 마지막 진언을 세 번 외며 심학산으로 내처 올라갔다. 영산홍, 진달래과의 반상록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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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