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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배구스타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에서 시작된 학교폭력(학폭) 논란의 여진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남자 배구로 불이 옮아붙더니 곧이어 야구와 축구 등 다른 스포츠로, 연예계와 일반인으로 “나도 고발한다”는 피해자들의 ‘학폭 미투’가 확산 중이다. 처음엔 폭력의 수위와 가혹함에, 나중에는 그 광범위함에 놀라고 있다. 스포츠계 학폭 논란의 근본 원인으로 성적 지상주의나 엘리트체육 문화를 꼽는 이들이 많다. 무슨 방법을 써서든 꼭 이겨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데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팀 전체 성적을 좌우하면서 지도자 처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분위기에서 감히 그들의 폭력을 문제 삼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체육계의 폐쇄성까지 더해지며 자매의 폭언과 폭행은 은폐되다 10년이 넘어서야 터져나왔다.

비단 이런 일이 스포츠계뿐일까. 정도는 다를지언정 우리의 학교 모습이 자꾸만 겹쳐 보인다. “1등만 기억될 뿐 2등도 의미가 없다”는 스포츠계의 성적지상주의와, 1·2등급에만 신경을 쏟고, 스카이 대학과 의·치·한 진학 학생들을 학교의 간판으로 삼는 상황은 얼마나 다른가. 성적만 오른다면 어떤 방법도 감수하겠다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의 삼각 카르텔, 학폭이 발생해도 행여 학교 평판에 문제가 생길까 쉬쉬하는 모습은 기본적으로 체육계와 닮은꼴이다.

얼마 전 <코로나19가 ‘해방’인 아이들>이란 경향신문 칼럼에서, 적지 않은 아이들이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대목을 접하곤 망치로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죽은 듯이’ 공부만 해야 하는 학교, 코로나19 이전부터 통제와 억압의 공간 그 자체가 아이들에겐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적과 위계에 따라 몇 명만이 발언권을 갖고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가슴속 상처들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이제 한 해에 30만명도 되지 않는 아이들이 태어난다. 1970년대 중반까지 100만명이 넘던 기성세대에 비하면 3분의 1이 안 된다. 그런데 이 적은 아이들을 자꾸만 나누고 경쟁시킨다. 영어유치원과 일반유치원에서 한번, 사립초를 한번 더 거쳐 특목고·자사고·일반고·특성화고(옛 실업계고) 등으로 줄세운다. 한 줌에 불과한 특목고·자사고의 입시가, 고3 수험생의 2%뿐인 스카이 대학, 15개 ‘인 서울 대학’의 입시가 가장 첨예한 교육 이슈가 되고, 교육현장을 뒤흔든다. 나머지 학생들의 학교생활, 그들의 꿈과 불안에 우리 사회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10년 전인 2011년에도 학폭 이슈가 사회를 강타했다. ‘대구 중학생 사건’으로 불렸던 15세 소년의 죽음. 물고문과 구타, 금품갈취 등 동급생의 상습적인 괴롭힘에 시달리다 짧은 생을 마감한 권모군의 유서를 읽으며, 엘리베이터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훔치던 모습에 전 사회가 ‘학폭 근절’을 다짐했다. 이듬해 학교폭력예방법이 개정되고 학교폭력전담경찰관제가 도입됐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학폭은 근절되지 않았다. 오히려 가해 사실조차 은폐하는 사이버 폭력 등 신종 학폭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동시다발적인 ‘학폭 미투’ 물결은 학교와 사법체계를 통한 그동안의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쌍둥이 자매에겐 무기한 출장 정지와 국가대표 박탈 등의 징계가 내려졌다. 선수 복귀까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엔 달라질까. 돌출된 부분만을 잘라냈다는 점에서 또다시 절반뿐인 대책이다. 폭력은 피해와 가해가 교차하며 전 생애에 걸쳐, 신체·언어·정서 폭력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는 특성이 있다. 폭력을 용인하는 문화 속에선 새로운 폭력이 싹튼다. 깊고 질긴 폭력의 뿌리를 단번에 끊는 쉬운 해결책은 없다. 폭력의 토양 자체를 양지에 드러내 볕을 쬐이고 서서히 없애는 길만이 근본 대책이다.

새 학년이 시작됐다. 팬데믹과 학폭 사태 속에서 학생들을 맞는 올해는 학교의 역할부터 본질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서로 다른 배움의 속도와 장단점을 인정하고,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는 곳이 되어야 한다. 등교가 두려운 아이들이 있어선 안 된다. 눈빛이나 말 한마디, 작은 몸짓으로도 서로를 찌를 수 있다는 사실을 부모가, 교사가, 학생들 스스로가 날마다 일깨워 인권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우리 모두가 공범자로, 혹은 방관자로 묵인해온 학교폭력의 잔혹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출생률 최저국가, 한 아이, 한 아이를 위해 이 사회가 온 힘을 기울여 완수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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