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모 평생교육원에서 12주차 글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혼자서 다하는 것은 아니고 강백수라는 시인과 함께, 정확히는 ‘대중문화비평’이라는 이름으로 한다.  

이런 건조한 자리에 누가 올까 싶었는데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모인다. 모두 걸어서 10분 거리의 동네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여러 이슈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글을 쓴다. 특히 ‘동네의 현안’에 대한 질문에는 저마다 멋진 제안들이 많아서 좋았다.

지난주에는 우리는 어떠한 글쓰기를 해야 할 것인가, 하고 이야기 나누었다. 그때 가장 활발하게 참여해 온 40대 남성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아내도 결혼하고 10년쯤 지나니까 제 말을 잘 안 들어요.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은데, 새로운 말이 필요할 것 같아요”하는 내용이었다. 난 그가 “아내가 제 말을 잘…”하고 말한 순간부터 “저, 잠시만요”하고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생겼으나 우선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수강생들이 그 표현에 무언가 불편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 미안한 심정이 되었다.

나는 말을 마친 그에게 “아내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한 것은 아마도 명령의 의미가 아니라 대화를 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는 내용인 것 같아요, 맞지요?”하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읽을 타인에게 불편함이나 상처를 주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맥락이 어떠하더라도 사람들은 하나의 단어와 한 줄의 문장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글의 온도는 그것으로 결정된다. 특히 쉽게 상처 받는 것은 소수자들이다. 일상에서 여러 이유로 차별을 감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단어와 문장이 아니라 어딘가에 위치한 부호 하나의 무게마저도 짐이 되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글을 읽어내는 힘을 탓하기 이전에, 쓰는 사람의 무감각을 더욱 문제 삼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맥락을 전달하고 싶을 때는 그 사례에서 자신이 ‘을의 자리’로 스스로 내려가면 된다. “결혼하고 10년쯤 지나니까 아내가 제 말을 잘 안 들어요(아내에게 문제가 있어요)”라는 것을 “결혼하고 10년쯤 지나니까 저도 아내의 말을 잘 안 듣게 되었어요(저에게 문제가 있어요)”라고 하면, 그 주체만 바뀌었을 뿐인데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을 표현이 되는 것이다.  

나는 40대인 그에게 “사실 선생님 나이대의 남성들은 글에서 조금 상처 받아도 괜찮습니다. 왜냐면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상처 주는 쪽에 있기 때문입니다”하고 덧붙였다. 어쩌면 중년 남성들은 나의 이 문장에 분노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상대적으로 권력을 가진 편에 있음을 드러낸다. 분노 역시 가진 사람의 몫이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상처와 상실이 남는다.

그 남성이 “저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글을 쓰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여기에 온 거예요. 고맙습니다”하고 말해서, 나는 그가 정말로 고마웠다.  

그때 그의 뒤에 앉은 여성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는 그에게 “아까 말씀하셨을 때 저 사실 불편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하고 말했다. 나는 이때 무언가 눈물이 날 만큼 둘에게 고마웠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간 사용해 온 언어를 고쳐나가겠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랬기에 그에게 상처 받았던 누군가도 그에게 다정한 고마움을 전할 수 있었다.

사회와 문화를 비평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에게, 나는 그러한 글쓰기를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함을 전하고 싶다. 자신을 거쳐나가지 않은 물음표는 쉽게 타인을 규정하고 상처 주게 된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가?”라는 데서 시작한 물음표는 타인과 사회를 향해 건강하게 확장된다. 그러면 그는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만들고 거기에 쉼표 하나를 넣을 때마다 타인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나는 글쓰기란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쓰는 사람들이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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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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