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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오 | 농부


“정말 시골로 내려갈 거야?”


“응, 그럴 생각이야.”


“농사를 짓는 거라면 여기서도 할 수 있어.”


 “단지 그것만은 아니야.”


“울타리를 벗어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그렇다면 이 세상 자체가 울타리겠지.”


“이십 년 수도생활을 이런 식으로 접을 순 없잖아.”


“여기에만 길이 있는 건 아닐 거야.”


막 오십 줄에 들어선 그는 수도회를 나와 아무 연고 없는 시골마을에 들어갔다. 조그만 방 한 칸에 재래식 부엌이 딸린 낡은 빈집이 가족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그에게는 부족하지 않았다. 그 집에 들인 세간은 작은 중고 냉장고 하나와 아귀가 잘 맞지 않아 삐걱거리는 삼단 서랍장이 고작이었다. 계절마다 입는 옷은 늘 한두 가지에 불과했고 찢어진 신발은 기워 신었다. 그래도 예전에 서울 중림동 쪽방촌에서 노숙인과 행려병자와 함께한 공동체 생활에 비하면 훨씬 윤택했다. 그는 가난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었다.


집에 딸린 땅은 오십여 평의 응달진 텃밭뿐이었다. 그는 가끔 동네 목수 최씨를 따라 집짓는 현장 잡부 일을 해서 일당벌이를 했고, 최 목수를 통해서 남의 논을 조금 얻어 지었고, 비좁은 마당에 닭 네 마리와 오리 세 마리를 키워 알을 얻었다. 그것으로 소박하게 생계를 꾸렸다. 사람들은 마을 구석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그를 김씨라고 불렀다.


그는 일을 성실히 했고 또 잘했다. 최 목수는 일손이 부족할 때마다 그를 불렀다. 


“김씨, 나하고 함께 일해 볼 생각 없어. 마을에는 쓸 만한 사람이 없어서 말이야.”


“아직은 농사일도 버거워서 … ”


“이 집 저 집 불려 다니며 농사일 거들어봐야 남는 거 하나 없어.”


“그래도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부르시면 거절하기도 어렵고 해서.”


“품삯을 제대로 받기는 받나?”


“…… ”


그는 누구의 부탁이든 거절하지 않았다. 남의 논밭에서 풀을 매는 그의 모습을 보기는 쉬워도 정작 자신의 논밭을 매는 그의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다. 그의 조그만 텃밭은 늘 풀이 무성했다.





그는 삼남매의 맏이였다. 그와 두 동생은 서로 아버지가 다른 형제였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 없는 집안의 가장 노릇을 했다. 바로 밑의 여동생은 그를 끔찍이 따랐다. 인천에 사는 그 여동생이 그의 시골집에 아주 가끔 들렀다. 마을사람들은 그의 집에 들어서는 낯선 중년의 여인을 멀리서 가만히 바라보곤 했다.


“오빠, 땅을 조금 사면 어떨까?”


“남의 땅 조금씩 얻어지어도 내 한 몸 충분히 건사할 수 있어. 가지면 괜히 짐만 돼.”


“그래도 시골에서는 자기 땅이 있어야 정착할 수 있잖아.”


“어차피 떠날 몸인데…… ”


“그동안 오빤 너무 힘들게만 살아왔어.”


“몸은 그랬을지 몰라도 마음은 편한 생활이었어.” 


“내 땅을 오빠가 대신 사준다고 생각해 줘. 오빠, 부탁이야.”


곧 대학생이 될 자식을 둔 여동생은 십 년간 알뜰하게 부어온 적금을 깼고 그는 땅을 샀다. 조그만 언덕배기 중턱의 두어 마지기쯤 되는 다랑논이었다. 그는 난생처음 자기 이름의 땅을 소유했다. 아니 난생처음 자기 것을 가졌다. 마을에서 일손을 청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날이면 그는 오래되고 낡은 50㏄ 오토바이를 타고 어김없이 그 논을 찾았다. 물이 들어찬 논에 들어가 풀을 매고 논둑에 앉아 땀을 식히며 막걸리를 마셨다. 언덕 아래로 파란 벼의 물결이 바람에 출렁거렸다. 그때마다 그는 여동생을 오토바이 뒷좌석에 태우고 함께 논을 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에게 그럴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추수가 임박한 어느 가을날, 수도회의 한 형제가 그의 집을 찾았다. 이십여 년 동안 그와 함께 수도생활을 했던 형제였다. 그의 친구이자 도반이자 친형제 같은 형제였다.


“시골생활이 힘들지는 않아?”


“자연을 조금 좇아갈 정도는 됐어.”


“이제 농부가 다 됐네.”


“겉껍데기일 뿐이야.”


“혼자서 외롭겠지.”


“누군들 외롭지 않겠어. 숙명 같은 걸 텐데.”


“시골에 내려온 지가 벌써 칠년이야. 긴 세월이야.”


“시간이 말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흘러간 시간만큼 끝은 다가오고 있는 거겠지.”


“인생의 끝?”


“그래, 끝이자 시작인 그 지점.”


끝이라는 말에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 형제가 말을 이었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지 않으면 이생은 무슨 의미가 있겠어?”


“살아간다는 건 그런 의미에 구속되지 않아.”


“시골에서 홀로 조용히 지낸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난 나의 삶을 살아낼 뿐이야.”


삼 일 후, 시골마을의 아주 작은 공소에서 장례미사가 열렸다. 그의 두 동생과 수도회 형제들, 그리고 마을사람들이 모였다. 모두 스무 명 남짓 모인 조촐한 장례식이었다. 그의 주검은 한적한 농로길을 지나는 사람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의 50㏄ 오토바이는 다랑논을 오르는 비탈길의 길목에 있는 농수로 안에 깊숙이 처박혀 있었고, 시커먼 오토바이 바퀴자국이 농로길에 짙게 남아 있었다. 그의 몸은 논 한구석 누런 벼들 속에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한밤의 냉기를 피하려는 들짐승처럼. 


그와 수도생활을 함께 했던 사제신부가 장례미사를 집전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김 안토니오는 아는 이 하나 없는 시골에 아무것도 없이 홀로 왔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들판에서 외로이 떠났습니다. 김 안토니오가 살아온 길을 생각하면 사제복을 입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이 위선임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마을사람들은 그날에서야 비로소 김씨가 본명이 안토니오인 가톨릭 수도사였음을 알았다. 김씨는 자신의 지나온 길을 지우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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