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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 전대미문의 역병과 이상기후의 최대 희생양이 됐다. 그것도 미국 제일주의를 앞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 미국 서부에서 시작된 초대형 산불은 한 달 넘게 꺼지지 않고 있고, 남동부는 허리케인으로 쑥대밭이 됐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 수도 미국이 가장 많다. 재해도 ‘아메리카 퍼스트’인가.

최근 몇몇 사진들은 세기말을 다룬 할리우드 공포물에서 포착한 스틸 컷 같았다. 샌프란시스코 랜드마크인 금문교 주변은 붉게 물들었고, 로스앤젤레스 도심은 26년 만에 최악이라는 잿빛 스모그로 뒤덮였다. 산불에서 비롯된 연기와 재가 도시까지 흘러들어온 결과라고 했다. 미국 언론들은 ‘종말’ ‘핵겨울’이 온 것 같다고 표현했다. 피해는 시각적 충격을 넘어선다. 500만에이커(약 2만234㎢) 이상의 땅이 불탔고, 피해액은 최소 200억달러로 추정된다고 한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화재 발생 지역의 공기질을 두고 “담배 20갑을 피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같은 시기 시속 165㎞의 강풍을 동반한 허리케인 샐리가 남동부 플로리다주와 앨라배마주를 덮쳤다. 강풍과 폭우로 50만여가구가 정전되고 수백명이 구조됐다. 주택들이 무너졌으며, 건물 벽이 바람과 물에 쓸려 뜯겨나간 흔적도 보였다.

설상가상, 코로나19는 미국의 정수리를 후려쳤다. 확진자는 700만명에 근접했으며, 사망자는 20만명을 넘겼다. 가을, 겨울, 기온이 내려갈수록 코로나19는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전염병 권위자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보건원 산하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장은 설사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정상적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2021년 말은 되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는다. 물론 코로나19의 타격으로 각국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일 것이다. 다만 트럼프의 막가파식 행태에 질린 다른 국가들이 현 상황을 수수방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의 압박과 협박에 시달렸던 중국 시진핑은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며 방역 관계자들에게 무더기 훈장을 안기던 순간 “트럼프, 보았나”라고 마음속으로 외쳤을 법도 하다. 트럼프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할 때 만류했던 다른 국가 정상들은 ‘쯧쯧, 한 치 앞도 못 보고’라고 혀를 차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미국의 비극을 남의 일인 양 팔짱 끼고 구경만 할 수는 없다. 가령 산불과 태풍의 원인으로 지구온난화가 지목된다. 지구온난화가 초래한 건조한 기후가 산불을 키웠고, 온난화로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면서 태풍 활동도 증가했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를 초래한 무분별한 개발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국가가 어디 있는가. 지구온난화가 초래한 재앙은 이미 전 지구적으로 진행 중이다. 지난해부터 세계 곳곳에서 잦아지고 있는 대형홍수와 산불이 증거다. 지난여름의 끝, 한반도도 ‘바비’ ‘마이삭’ ‘하이선’ 등 3개의 강력한 태풍을 경험했다.

코로나19라고 다를까. 인간이 야생동물을 잡아먹기 위해 그들의 서식지를 침범하고, 생태계를 파괴한 것에 대한 파국적 결과물이 코로나19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물론 코로나19를 은폐하는 등 초기 대응에 실패한 중국 책임이 적지 않지만 근본 원인은 인간 탐욕이라는 것이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에볼라 바이러스 등의 전염병들이 비슷한 경로로 시작됐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우리는 이 행성에 마지막으로 남은 거대한 숲과 야생 생태계를 침입하여 물리적 구조와 생태학적 공동체를 파괴해 왔으며, 지금도 계속 파괴하고 있다. (중략) 이익을 노리고 나무들을 베어 넘어뜨렸으며,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른 채 돈을 챙기는 데만 급급했다. 숲에서 발견한 야생동물들은 보는 족족 죽여 고기를 먹어치웠다.”(데이비드 콰먼,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중에서)

하여 이런 생각을 해본다. 최강국인 미국을 본보기로 겨눴을 뿐 실상 자연의 경고는 전 세계를 향한 것이 아닐까. “미국 당하는 것 봤지? 이런 데도 무분별한 개발을 계속하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겠다.” 고인이 되신 생태사상가 김종철 선생은 ‘녹색평론 172호’에서 이렇게 썼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는,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끊임없이 갉아먹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

<이용욱 국제부장>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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