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에서 막내딸 코딜리아는 아첨을 좋아하는 늙은 부왕 앞에서 입바른 소리만 하다가 땅 한 뙈기도 얻지 못하고 왕궁에서 쫓겨난다. 언니들처럼 입에 발린 소리로 재산을 얻어내기엔 그는 너무 맑았다. 그리고 리어왕은 입맛에 맞는 말만 골라 들었다. 칠판 앞에서 나이 지긋한 교수님이 툭 던진 말씀이 기억나곤 한다. “이 작품의 교훈이 뭔지 아는가? 사람은 늙어 죽는 순간까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자는 바른말을 싫어한다. 일반적인 속성이다. 권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의 자아는 나르시시즘으로 비대해진다. 체중을 감량하듯 매일같이 덜어내지 않는다면 나르시시즘은 권력자의 사고체계를 삼켜버리고, 자아성찰 능력을 마비시킨다. 권력을 쥔 이는 매일같이 홀로 자신과의 외로운 전쟁을 견뎌야 한다. <반지의 제왕> 속 ‘절대반지’의 유혹과 싸우느라 프로도가 겪는 고난은 선량한 이의 내면마저 잠식하는 권력의 속성을 상징한다. 주변의 선한 이들이 그를 도울 순 있어도 무거운 내면의 그림자는 오롯이 그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게다가 권력의 크기가 커질수록 주변의 침묵은 깊어진다. 또는 리어왕의 다른 딸들처럼 ‘입 안의 혀’가 된다. 바른말을 했다가 ‘손해’를 보느니 차라리 아무 말을 않거나 비위를 맞추며 사익을 챙기는 것이다. ‘부장이 허심탄회하게 말해보랬는데’ 부장의 은근한 뒤끝을 겪게 된 이들 사이에 ‘말해봤자’라는 처세술이 구전된다.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고들 하는데, 마음에도 ‘마찰력’이 있어서다. 생물의 행동 메커니즘은 ‘에너지 보존과 절약’이 기본이라 현 상태를 바꿀 절박한 이유가 없다면 제자리에 안주한다. 많이 아프면 병원에 가지만 애매한 통증은 견디며 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른말’을 업(業)으로 삼은 경우는 조금 다르다.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다원사회는 일을 추진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훈수 놓을 사람도 필요하다. 한 사회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며 후세에 물려줄 가치를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나아갈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돕는 이들이다.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말에 다른 구성원들이 귀기울이는 데는 이들이 사리사욕을 꾀하지 않으며 공익을 추구한다는 큰 전제가 깔려 있다. 이들은 ‘상징자본’을 사회로부터 위탁받는데, 이를 사유화해선 안 되고, 다음 세대의 활동가들에게 이어줄 책임을 갖는다.

하지만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이 현 정부에 대거 기용되고 권력을 갖게 되면서 이 같은 전제는 틀어져버렸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권력자와 기업들에 윤리적 책임을 준엄하게 물었던 이들은 자신이 권력을 갖게 되자 자기반성 능력을 잃었다. 낡은 가방 메고 경제민주화에 매진한 것으로 알려졌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5%’ 전세가 상한제 시행 직전에 14% 넘게 올려 받았다. ‘세월호 변호사’로 응원받으며 국회에 입성한 박주민 의원은 ‘전·월세 인상률 5%’ 법안을 대표발의하고도 정작 본인은 세입자에게 월세를 9% 넘게 올려 받았다. 앞에서는 성평등을 외치고 뒤돌아서 동료를 성추행한 경우는 또 어떤가.

권력을 가진 이들이 상황에 따라 이중잣대로 이익을 극대화하면서도 그 모순을 깨닫지 못한다는 심리학자들의 말이 생각난다. ‘바른말’로 상징자본을 사유화하는 동시에 자신의 사익(私益) 추구에도 최선을 다하는 이기심을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자기기만에 빠져버린 것일까. 세상에서 속이기 제일 쉬운 건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과거의 선행은 현재의 잘못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 같은 현 정부 인사들의 표리부동이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애써온 모든 이들에 대한 냉소로 굳어질까 두렵다. 코로나19에 따른 산업재편과 양극화 위기 속에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와 충격을 보통 사람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텐데, 팔짱 낀 냉소로는 아무것도 대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이들은 권력에 도취되지 않기 위해 ‘백신’을 맞듯이 코딜리아의 입바른 소리 같은 비판에도 귀기울여야만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리어왕은 가장 총애하는 막내딸의 직언인데도 끝끝내 귀를 닫고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양 불같이 화를 냈다. 불행 중 다행은 우리가 그런 리어왕의 최후를 알고 있으며, 그 비극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민영 경제부장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