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잘 맞이하셨나요. 마음먹은 대로 시작을 하셨는지…. 사흘 연휴가 금방 지났는데, 설마 ‘작심 3일’은 아니겠지요?

새해 첫날 새벽을 두물머리 강변에서 보냈습니다. 남한강, 북한강 두 물이 한강으로 하나되는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양수리). 넓은 강과 큰 느티나무,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물안개, 두물머리는 해가 뜰 때는 물론 질 때의 노을도 아름다운 곳이죠.

걸어가도 될 정도로 근처에 살지만, 해맞이 명소라는 두물머리에서의 해맞이는 처음입니다. 사실 ‘해맞이를 해야지’하는 마음을 다지고 새해를 시작한 것이 처음인 것 같네요. 어디로 가서 특별한 해맞이를 하는 것에 끌리지 않았죠. 게으른 탓이기도 하고, 유난을 떠는 것이 싫기도 했습니다. 그저 다세대주택 옥상에서, 아파트 단지 언덕에서 체육복 바람으로 해맞이를 했죠. 100여년 전 선농일여 정신으로 수행한 학명 선사의 깨달음이 좋았다고나 할까요. “묵은 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나/ 겨울 가고 봄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지금 이 순간, 바로 오늘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사실 1월1일 떠오르는 그 해가 뭐 특별할 것인가. 어제나 오늘이나, 또 내일의 해가 다른 게 무엇인가. 모두가 느끼고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문제이지. 새해 첫날 해돋이라고 부산을 피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자들은 ‘티끌 같은 먼지 하나’에서(의상대사), ‘나락 한 알’에서(무위당 장일순), ‘모래 한 알’(윌리엄 블레이크)에서도 우주를 본다고 했잖아요. 그런 현자들의 직관의 힘, 깊고 넓은 통찰력을 진심으로 부러워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올해는 새벽 안개를 뚫고 두물머리를 향해 걸었죠. 해맞이라는 작은 이벤트가 팍팍한 일상에서 나름 소소한 행복 찾기일 수 있겠다,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겠다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큰 도로로 나서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시간에 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죠. 강변길도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아기를 안은 젊은 부부, 손을 맞잡은 노부부, 가족과 연인들…. 나처럼 작은 이벤트를 갖는 것일까, 늘 해오던 일일까, 아니면 이 새벽에 옷을 차려입고 여기 올 만큼 절절한 그 무엇이 있는 것일까. 여러 물음도 생기더군요.


마침내 해가 떠오를 시간, 짙은 안개가 해를 가렸습니다. 다들 아쉬워하는 표정입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의식을 치렀죠. 나직히 소원을 빌거나, 풍등을 날리고, 눈을 감고 묵상과 묵도를 하면서. 희망과 꿈을 되새기며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누군가는 로또 당첨을, 누군가는 ‘뚱뚱한 지갑과 날씬한 몸매’를 원했을 것입니다. 두물머리의 새벽은 그렇게 잘 먹고 잘 살기를 다짐하고 기원하는 사람들로 수놓아졌습니다. 안개 속에 주민자치단체가 내놓은 떡국을, 차 한잔을 즐긴 이들이 하나둘 돌아서면서 해맞이는 마무리됐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름다운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서리꽃입니다. 지난여름 씩씩하게 하늘로 뻗어올랐으나 이젠 바싹 말라 꺾인 수많은 꽃대들에, 강변의 나뭇가지와 풀들마다에도 서리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곳곳에 많기도 했고, 저마다 독특한 모양입니다. 온몸이 훈훈해질 정도로 예쁘고,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신기했습니다.

불과 1시간 전 해맞이 갈 때만 해도 보지 못한 것들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왜 못 본 것인가. 그렇죠, 해맞이에 혹시 늦을까 허겁지겁 앞만 보고 걸었기 때문이죠. 내 삶이 이렇지는 않을까, 문득 두려움마저 느껴지더군요. 열심히 살아간다지만 왜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도 생각하지 않는 삶, 옆도 뒤도 살피지 않고 그저 앞만 보느라 수많은 가치있는 것들을 놓치는 삶. 잘 먹고 잘 산다는 게 어떤 것일까 제대로 사유해본 적이 있는가라고 자문해봤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한국 사회도 그럴지 모릅니다. 모두들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앞만 보고 쭉쭉 성장에 매달렸지만, 주변에 ‘낙수 효과’는 보이질 않습니다. 빈부격차는 더 커지고, 갖가지 갈등은 심화되고, 물질적 풍요는 누리지만 우울증을 앓고 삶이 헛헛하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젠 ‘왜 이럴까’ ‘더 나은 삶, 사회는 어떤 것일까’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때입니다.

올해는 저도, 우리 사회도 주변 서리꽃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그런 한 해였으면 좋겠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의 ‘풀꽃’)는 시인의 마음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옆 사람들, 소소한 주변 많은 것들과 어우러져 온몸이 훈훈해지는 인간다운 삶 말입니다. 허위없이 소박함으로써 성찰적인 일상, 그래서 늘 깨어있는 삶이면 더 좋겠습니다.


도재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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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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