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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가 법무부 장관이 되던 날 이종걸은 이런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형조판서가 입조했다. 의금부도사·포도대장은 이제 상급자를 모시게 되었으니 조정 대사에는 관심을 끄고 즙포(緝捕) 같은 원래 직분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챙겨야 할 것은 포승줄이지 오지랖이 아니다. 꼭 할 말이 있으면, 형조판서를 통해서 진언하거나, 상소를 올리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이 트윗 첨부 사진에 윤석열이 등장한 것으로 봐서 그를 겨냥한 경고로 보인다. 법무부 소속 외청인 검찰 기관장과 소속 검사들이 장관 지휘를 잘 받고, 죄인도 잘 잡으라는 취지의 말은 시비걸 게 아니다.

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이 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 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자손이어서가 아니라, 아나키스트 이회영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이가 왜 조선시대 통치기구와 직제를 끌어들여 비유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형조는 노비문서를 관리하던 장례원을 두기도 한 봉건 억압 기구다. 굳이 비유한다면, 국왕 직속의 의금부는 지금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포도청은 경찰청에 해당할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냥 비유 아닌가? 정권의 핵심 열혈 지지자 중에선 이런 말도 나왔다.

“꼭 민주공화국이어야 하느냐, 문재인 대통령께서 왕조를 여시는 게 어떻겠냐 하는 제 개인적인 바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변호사 이정렬이 2018년 12월 말 SBS <김성준의 시사전망대>에 나와 한 말이다. 이 발언을 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군주제국가로 바꾸는 개헌안에 찬성투표 하겠다” 같은 댓글이 이어졌다.

정말 조선시대와 세습 군주, 왕정을 그리워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없던 일이 됐지만, 건축가 승효상은 정권 교체 직후 대통령 관저·영빈관·경호실 등 청와대 부속시설이 들어설 후보지로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 두 곳을 꼽았다. 그 목표가 “권위주의 시대를 청산하고, 국운융성의 상징으로 만들겠다”였다.

이종걸의 비유도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비유는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 속성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언론에선, 지식사회에선 툭하면 지금 정치와 권력의 문제를 왕과 충신, 역적 관계에 치환한다. 현안을 곧잘 조선시대 일에 빗대 설명하는 이들은 자신을 충신과 사대부로 설정하기 일쑤다. 시민을 ‘백성’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다. 조선시대 왕의 일화도 미담으로 자주 불러낸다.

한국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을 들여와 논의한 지 수십년인데, 근대는커녕 봉건에서 벗어나긴 한 걸까. 구자경 사망 후엔 ‘LG가문이 유교적 가풍에 따라 4대째 잡음 없는 장자 승계 전통을 지켜왔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른바 ‘글로벌기업’인데, 재벌 세습에 관한 문제의식은 없다. 세습을 인정하더라도, 딸은 왜 승계하면 안되는가. 저건 평가할 일이 아니라 비판할 일이다.

전주시는 조선 왕조를 시의 자산과 정체성으로 삼았다. 대통령제를 두더라도 상징적인 왕실을 만들자는 취지의 ‘조선 황실 복원 운동’을 벌이는 황실문화재단에 2010년부터 연 9000만원을 지원해온 사실이 알려졌다. 전주시는 재단의 ‘황손과 함께하는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 등이 “조선 왕조 발상지로서 전주의 위상을 높인다”고 했다. 

시의 위상을 높이는 건 왕조에 대한 향수, 자부심이 아니라 삶의 질이다.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 때는 고종이 외교 고문 미국인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마지막 황손’이자 황실문화재단 이사장인 이석과 아나키스트의 후손 이종걸은 3·1절 100주년인 지난해 3월1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고종 장례행렬 재연 만세 행진 때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했다.

고종의 죽음을 3·1절 100주년의 핵심 이벤트로 삼은 일은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2년 전 취재차 단재 신채호의 옛 집터에서 만난 김삼웅은 이렇게 말했다.

“3·1운동이 아닙니다. 3·1혁명입니다. 왕조봉건체제를 거부하고, 민주공화제를 채택했어요. 여성해방을 외친 날입니다. 종교·계층·신분을 떠나 참여했어요.”

노동과 부동산, 취업과 교육 등 지금의 모든 문제는 공화국의 핵심인 ‘공공의 것’의 부재를 드러낸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불평등’도 공화국의 문제다. 

폐기할 때도, 완성된 것도 아닌데, 한때 거리에 가득 찼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낯선 말이 됐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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