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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

애비 로드

경향 신문 2021. 4. 1. 09:39

걷는 순서로 존 레넌과 링고 스타, 폴 매카트니, 그리고 조지 해리슨. 런던에 있는 애비 로드(Abbey Road) 횡단보도를 걷는 앨범 재킷 사진을 한 번쯤 봤을 게다. 이 거리는 나도 딱 한 번 방문. 마침 지나는 행인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직업 사진가라며 솜씨 발휘. 아주 잘 찍어주었는데 보통 자기 낯짝이 담긴 사진을 어디다 전시하랴. 외장 하드 어디에 틀어박혔는지 찾을 길도 막막해. 동명의 음반은 근처 음반사에서 녹음되었고, 조지 해리슨의 저 유명한 대표곡 ‘섬싱’이 여기 실려 있다.

면사무소 옆 초등학교엔 횡단보도가 있는데 느림보 거북이 되어 차들이 지나가고, 아이들은 군것질하러 마트로 달려간다. 멀찍이서 엄마 아빠가 하교하는 아이들을 기다리곤 한다. 면 단위에 학교가 남아 있는 게 신기하고 다행스럽다. 횡단보도에서 애비가 자식을 기다리면 그게 애비 로드가 된다. 건너편 주택가엔 빨래들이 봄볕에 나부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을을 이뤄 살아가고 있다.

지난달 서울 사는 아들이 잠시 쉬러 내려왔는데, 아빠 냄새가 좋다며 징그럽게시리 코를 킁킁 갖다 댔다. 내가 쓰는 비누며 땀내도 좋을 때라면 철이 조금 든 나이. 그러고 보니 녀석도 이십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나도 언젠가 아버지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와 넥타이, 단정한 차림으로 설교단에 선 아버지와 평일엔 논밭에 나가 동네분들 농사를 거들어 주던 땀내까지. 나는 넥타이 차림이 아닌 공단의 잠바때기나 청바지 차림으로 목사 생활을 했다. 지금도 위아래 자크르한 양복이 한 벌도 없다. 부자 아빠 덕을 보며 사는 캥거루 아이들만 있는 게 아냐. 애비를 따라 가난한 그 길을 뒤따라 걷는 아이들이 배나 많다. 거짓말과 탐욕으로 살지 않았으니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미안할 일도 없다. 부끄럽지 않을 때에만 애비 로드는 파란 신호등이 깜박거린다는 신비.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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