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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한때 스쳐가는 바람”일 줄 알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연공서열이 두꺼운 보수정당 당대표 경선에서 명함도 내밀기 어려운 30대 ‘0선’이다. 당내 선거의 필수 자원인 조직, 계파, 지역, 자금 어느 하나 변변하지 못하다. 여의도 문법과 정면으로 반하는 정치인 자격 시험, ‘정치적 올바름’ 폐기를 출마선언문에 못 박았다. ‘싸가지’ 없는 말투와 태도는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엄연한 보수정당 당원들과 상극이다. 경력도, 선거 밑천도, 정책도 빈약하고 허술한 1985년생 이준석 후보는 한 달 만에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의 주인공이 되었다. “동네 뒷산만 다녔다”(주호영 후보)고 조롱받던 ‘벼락 정치인’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할 판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 걸 꼰대들은 모른다.

국민의힘은 당의 역사를 1997년 한나라당 출범 때부터 잡고 있다. 조순-이회창-서청원-박희태-최병렬-박근혜-강재섭-박희태-정몽준-안상수-홍준표(이상 한나라당), 황우여-김무성-이정현(새누리당), 홍준표-황교안(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국민의힘). 역대 보수정당의 당대표 목록이다. 국민의힘 첫 당대표 자리에 36세 ‘0선’ 이준석이 채워진다면 그 파격성이 너무도 확연해진다. 전인미답의 ‘젊은 대표’다. 혁신적인 세대교체의 기운이 진보정당이 아닌 늙은 보수정당에서 태동하고 있어 더 충격적이다.

국민의힘 당원 70%가 ‘50세 이상’ 나이다. 영남권 당원이 55%를 차지한다. 얼마 전까지 수구꼴통, 태극기 부대, 아스팔트 우파 등으로 점철됐던 정당이다. 이리 낡고 늙은 정당에서 30대 당대표가 현실로 어른거리고 있다. ‘이준석 돌풍’은 지역과 이념이 아닌 2030세대의 지지와 특권에 물든 기성 정치에 대한 폭넓은 반감에 기반하고 있다.

국회의원 한 번 하지 못한 ‘0선’은 경륜 부족 등 약점이 아니라 기득권에 때묻지 않은 신선함의 표지가 되고 있다. 외려 선수(選數)는 낡은 정치의 상징물로 전락했다. 기성 정치에 대한 미래 세대의 실망과 반감이 그만큼 깊은 것이다.

야권 지지자와 당원들의 대선을 위한 전략적 선택도 작용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세대 반란’을 빼고는 이준석 돌풍은 설명되지 않는다. 이준석이라는 인물이 정치적 이상형이라기보다 기득권 해체와 정치 변화를 갈망하는 미래 세대가 ‘이준석’을 상징으로 호명했다고 봐야 한다.

사실 이준석이 내세우는 비전은 ‘공정경쟁’뿐이다. 절대적 공정 기조는 ‘여성·청년·호남 할당제 폐지’ 같은 과격한 주장으로 표출되고, 젠더 갈등을 지지층 동원에 이용하는 ‘혐오의 정치’로 민낯을 드러낸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파괴’에 대한 청년층의 불만과 분노가 크기 때문에 냉혹한 실력주의를 공정의 가치로 포장하는 데 이준석은 성공했다. 이준석의 맞춤형 ‘공정’에 청년층이 격하게 호응하고 그 바람이 보수야당 내 세대와 지역 간 벽까지 허물며 지지세를 확대한 것이다.

‘이준석 현상’은 진부한 여야 정치권에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촉발할 것이다. MZ세대의 진격은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주도권 다툼을 벌여온 지난 30여년의 정치판 자체를 위협한다. 야당 내에서만 그치지 않고 여당, 나아가 한국 정치지형 자체를 바꾸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차기 대선구도를 흔들 수도 있다. 그간 꿈쩍도 않던 정치권이 ‘이준석 돌풍’에 놀라 대통령 출마 자격을 40세로 제한한 헌법 조항을 손보겠다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두려운 정치환경을 마주하게 됐다. 그간 후지고 늙은 보수정당에 대비돼 절대적으로 누려온 비교우위를 더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여권의 대선 주자 중에서 가장 혁신적인 이재명 경기지사조차 ‘따분하게’ 보이게 만든다. 하물며 ‘독단적이고, 말만 잘하고, 겉과 속이 다른, 성과 없는 무능한 40~50대 남성’이라는 민주당 이미지는 더욱 도드라질 터이다. 넓고 깊게 변화하지 않으면 더 노쇠한 꼰대 민주당으로 훅 갈 수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이준석 현상’을 제대로 봤다.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분출한 결과이고 정치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다. 개인 이준석이 이 정치사적 시대 전환을 감당할 능력과 비전을 가졌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헤겔이 말한 ‘반동적 개인의 뒤틀린 욕망이 역사의 진보를 가져오는 아이러니, 역사의 간지(奸智)’라도 좋다. ‘이준석’이 구태의연한 정치질서를 타격하고, 고인 물을 휘젓는 소용돌이 구실을 한다면 그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양권모 편집인 sul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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