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에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은 증거 내밀기다. 발뺌하거나 다그치면 “증거 있어? 증거 대 봐”라고 방어하거나 공격한다. 증거가 없을 거라는 자신감에 찬 오리발이지만 막상 증거를 내밀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법정다툼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관계를 확정하려면 물증도 필요하고 증인도 불러 신문해야 한다. 모든 분쟁은 증거싸움이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증거로 증명하지 못하면 그 진실은 인정받지 못한다. 범죄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죄판결이 난다. 그래서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증거 수집에 열을 올린다. 때로는 증거를 인멸하기도 한다. 미행하거나 몰래 엿듣기도 하고 흥신소의 도움도 받는다. 불법으로 도·감청하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거나 위치추적기를 달기도 한다. 증거를 시멘트 바닥에 파묻기도 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현금 가방을 건네기도 한다. 증인과 입도 맞춘다. 올 들어 적폐청산 수사 때문이었는지 압수수색 건수가 대폭 증가했는데, 수사기관은 물증확보 수단으로 압수수색영장을 활용하고 있다. 휴대전화와 이메일도 들여다보고 금융계좌도 추적한다. 자백이 증거의 왕이었던 시절에 비하면 압수수색의 비중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때로는 영장 범위를 넘어서 포괄적으로 압수수색하기도 하고 압수수색으로 얻은 증거로 영장에 적힌 혐의와는 다른 별건의 범죄에 대한 수사를 하기도 한다. 증거로 유무죄가 판가름 나니까 증거수집에서 불법의 선을 넘어설 유혹을 느끼는 것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5월29일 오전 공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증거가 없으면 아무리 정황이 확실하고 심증이 있어도 무죄가 될 수밖에 없다. 증거재판주의다. 증거라고 다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유죄를 입증할 스모킹건이라도 위법하게 손에 넣었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증거의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이다.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압수수색해 찾아낸 물증이나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고 받은 자백은 증거로 제출되어서도 안되고 증명의 자료로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된 증거는 기본적 인권보장을 위해 마련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은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증거법의 대원칙이다. 도지사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이 도지사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고 때마침 들어온 도지사 비서관의 업무일지를 압수한 사건에서 그 업무일지에 도지사의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압수범위를 벗어난 위법수집 증거라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부정한 200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전환점이다. 아무리 진실발견이 형사소송의 목표라 하더라도 적법절차의 원칙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특이한 점은 이 판결에서 당시 대법관이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다수의견이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의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제시하고 있다면서, 증거수집 절차의 위법사유가 영장주의의 정신과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에 한해 그 증거능력을 부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별개의견을 개진했다는 점이다. 지금 사법농단 재판의 피고인으로서 권한남용 혐의의 증거가 들어있는 이동식저장장치(USB)의 압수수색이 위법하다고 주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법관 시절의 입장에 따르면 증거능력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재판에서 핵심 피고인들은 검찰의 압수수색의 적법성을 치열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양승태 피고인을 비롯한 고위 법관 출신 피고인들은 압수한 USB 등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저장장치에는 범죄사실과 관련된 엄청난 파일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증거능력 인정여부가 사건의 핵심쟁점이다. 양승태 피고인의 재판부는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절차에서 어떤 위반 행위가 없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했다. 최근 여러 재판에서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무죄판결을 내리고 있어 대법원 판례에 따른 당연한 결론이지만 사법농단 재판의 방패막 판결이자 방향제시일 수 있다는 지적이 검찰을 긴장하게 했었다. 어떤 항소심 재판부는 별건수사에 활용한 위법한 압수수색 관행의 근절을 힘주어 말했다고 한다. 재판부의 보도자료 배포가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증거법 대원칙이기는 하다. 피의자 피고인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적법절차의 원칙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위법수집 증거의 배제법칙은 법원이나 검찰 모두 법치국가 형사소송절차에서 지켜야 할 철칙이다. 실체적 진실발견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적법절차의 원칙 아래 형사사법 정의의 실현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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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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