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대전의 연구실에 출근했더니 연구동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히 주차되어 있었다. ‘불금’을 마치고 좀 쉬다가 나와도 좋고, 안 나와도 좋을 것 같은 때이지만, 대학원생들이나 박사후 연구원 등이 여지없이 출근을 한 것이다. 방학 중 연구하려고 머무는 학교의 전통에는 “새벽 2시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이라는 게 있다. 늦게까지 실험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로 가는 셔틀버스는 새벽 2시를 넘어서까지 출발한다. 또 이른 새벽 기숙사에서 연구동까지 학생들을 실어 나른다. 매점은 새벽 2시까지 운영되는데, 시험기간에는 그마저도 연장 운영을 한다. 교내 식당은 명절만 아니라면 세 끼 식사를 제공한다. 공부에 미쳐서 공부만 하라고 만들어낸 학교의 풍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9 to 6’ 바깥에서

일하고 생각하고 사람을 만난다

변화하는 생애주기와 일의 맥락

이를 고려하지 않는 워라밸 강조

손에 닿지 않는 솜사탕과 같다


한편 내가 근무하는 대학을 졸업한 후 이 대학에 취직한 제자는 오후 6시에 퇴근하면 학생이 아닌데도 공모전 스터디 모임에 나간다. 개발자들이 각자 작업한 코드를 매일 온라인에서 공유하는 ‘1일1커밋’ 운동이 있는데 여기에도 동참한다. 남는 시간에는 영어 공부를 한다. 지인 중 한 명은 스스로를 ‘N잡러’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한 곳의 직장에 다니면서 프리랜서를 겸직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두 직장을 날짜를 나눠 출근하게 됐다. N잡러는 몇 개의 직장을 갖고 있느냐보다 일의 맥락을 쥐고 집중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단다. 몇 달 전 멀쩡한 직장에 다니던 친구들은 유튜브 채널을 열고, 퇴근 후 시간을 기획과 촬영과 편집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잠을 못 자 다크서클이 내려와도 ‘그 재미’를 포기할 수가 없단다.

하이퍼 텐션. 사전에선 고혈압을 뜻하지만, 최근 텐션이라는 단어의 용법을 생각하면 이야말로 한국 사람들을 잘 표현하는 말인 것 같다. ‘하이 텐션’의 일본식 용법을 생각하면 감정이 최고조에 있기도 하고, 영미식 용법을 생각하면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다는 말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연 2000시간 넘는 과로에 대한 문제제기가 수십년 이어지고 주 52시간제의 도입과 더불어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의 시대가 왔지만, 일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커피와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일련의 압박 속에서 계속 일을 벌이고 궁리를 하고 자투리 시간을 삭제해 가는 사람들.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는 하이퍼 텐션을 가진 한국인들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 산업화 시기 해외의 기술을 ‘몰래’ 가져오기 위해 많은 엔지니어들은 해외 출장을 가서 호텔방에 모여 낮에 목격한 제품의 도면을 그려내느라 밤을 잊었다. 심지어 체제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민주화 또는 대안 사회를 꿈꾸던 운동권 대학생들조차 매일 밤 동아리방이나 학생회실에 모여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궁리를 몇 십년간 했다. “치열하게 살았다”는 산업화 역군과 민주화 투사를 관통하는 코드다.

N잡러나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직장인, 연구자와 학생들 중 많은 경우는 기업과 국가 같은 조직이나 정치적 대의에 충성하지 않는다. 항구적인 조직보다는 일시적으로 모인 프로젝트, 위아래보다는 수평적인 관계를 선호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된 노동을 하기보다는 자기의 정체성을 ‘자기의 일’을 통해 찾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개인화되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하이퍼 텐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공통점이라 볼 수 있다. 어쩌면 이들은 군더더기 없이 하루를 최적화해 세계와 조우하려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워라밸의 시대에 대해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고 자정까지는 자신과 가족, 공동체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는 재생산의 시간으로 보낸다는 생각은 19세기 마르크스 시절 유럽 노동운동가들의 관념이다. 오후 6시면 대다수 가게가 문을 닫고, 사람들이 퇴근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여가활동에 참여한다는 것 역시 유럽적 사고방식일 뿐, 편의점과 주점과 카페와 PC방이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고 새벽에도 택배가 문 앞까지 도달하는 2020년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수많은 사람들이 ‘9 to 6’의 세계 바깥에서 살고 일하고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람들의 생애주기, 변화하는 일의 맥락 등을 고려하지 않은 워라밸의 강조는 불안정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손에 닿지 않는 달콤한 솜사탕이거나, 한참 도전해야 할 이들에게는 사다리 걷어차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의 수많은 하이퍼 텐션을 가진 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브레이크일까, 아니면 고혈압을 관리할 혈압약과 관리일까? 전염병 같은 현상으로 보거나 “다시 뛰자 코리아” 관점으로만 부추길 일은 아닐 것 같다. 논의의 출발점을 ‘지금 여기’로 바꾸면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도 달라진다. 상상력의 여지가 많아졌으면 한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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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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