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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어설픈 채식

경향 신문 2020. 5. 28. 10:29

손님이 주문한 탕수육 배달을 위해 가게에 들렀다. 사장님은 홀 손님과 밀린 주문으로 정신이 없었다. 바쁜 배달기사를 붙잡아두는 게 미안했던지 사장님은 튀기고 있던 탕수육 한 조각을 빼서 달콤한 소스를 쓱쓱 묻히고는 내 입에 넣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따뜻한 참사다.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라이더를 챙기는 아름다운 마음,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 뱉었을 때의 어색한 상황 등 복잡한 감정과 생각이 뒤섞였다. 

지난해 가을, 살처분 영상을 본 게 화근이었다. 산 채로 포클레인에 들려 구덩이로 던져지는 돼지들과 살기 위해 흙을 파고 올라온 돼지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즈음 동물해방운동단체 DxE(Direct Action Everywhere) 코리아를 알았다. DxE에 따르면, 돼지들은 서로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꼬리가 잘리고 이빨이 뽑힌다. 인간들이 싫어하는 잡내를 없애기 위해 마취도 없이 거세당한다. 돼지와 닭들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사육장에 갇힌 채 자라서 수개월 만에 도살당한다. 수컷 병아리는 그 짧은 삶도 살지 못하고,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온몸이 찢긴다. 

공장식 축산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학살을 보니, 내가 사는 세상이 달리 보였다. 삼겹살이 아니라 돼지의 살점이, 쇠고기가 아니라 소의 몸과 창자가 부위별로 찢겨 도시의 구석구석에 걸려 있었다. 채식은 자신이 없었고, 눈에 보이는 고기라도 먹지 말자는 결심을 했다. 어설프고 위선적인 채식이라도 막상 실천하려니 쉽지 않았다. 

김밥집에 가서 햄을 빼달라고 하면, 보란 듯이 햄이 나온다. 게임을 하듯 햄을 일일이 빼내는데 어른들이 보기라도 하면 깨작깨작 먹는다고 한 소리 들을 게 분명하다. 단체 회식은 보통 고깃집으로 가는데, 나 하나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기 힘들다. 고기 없는 식당을 찾기도 어렵다. 마침 연장자와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몸에 밴 습관처럼 고깃덩이를 굽다가 현타가 와서 집게를 놓고 말았다. 버릇없어 보이더라도 사장님을 불러 공깃밥과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된장찌개를 시켜 홀로 먹었다. 모든 순간이 투쟁과 불편함의 연속이다. 

과거에 개인적 실천은 사회를 바꾸지 못한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 뭐라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응원은 못할망정 세상의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 취급을 했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렇다고 내가 환경을 위해 열심히 싸운 것도 아닌데, 지구가 들었다면 혀를 끌끌 찼을 것 같다. 막상 해보니 데모보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게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변화도 있다. 자주 가는 식당 사장님은 쇠고깃국을 먹지 않자 따로 된장국을 끓여주셨다. 40~50대 남성들이 주축인 조합원들은 위원장이 고기를 먹지 않자 백반집과 해산물집을 찾는다. 위계에 따른 갑질인지 모르겠으나, 기분 좋은 변화다. 

동물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던 20대 청년노동자가 분쇄기에 몸이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 휴대폰을 만들다 시력을 잃은 청년이 있는가 하면, 배를 만들다, 아파트를 짓다, 배달하다 매일같이 사람이 죽는다. 산업재해로 죽은 사람들의 얼굴이 우리가 이용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보인다면 우리는 맨 정신으로 소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삼겹살집 간판에 웃음 짓는 돼지가 있듯, 산재 기업의 광고에 웃음 짓는 연예인이 있다. 

DxE는 돼지 한 마리를 구조하고 새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근 새벽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진흙에서 행복하게 뒹구는 새벽이를 보면서 족발을 떠올리긴 힘들다.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인 동물을 구조해, 그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생추어리’라 한다. 생추어리를 마련하기 위해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공장과 일터에서 동물과 사람이 죽고 감염병에 걸리는 이유는 같다. 우리 사회 곳곳에 생추어리가 건설될 수 있도록 불편함의 연대, 비용의 연대가 필요하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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