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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9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서울청사에서 평검사 10명과 마주 앉았다. 강금실 참여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의 기수 파괴 인사에 반발하는 검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검사들과 허심탄회하게 검찰개혁에 대해 의견을 나눠보겠다는 게 대통령의 속내였다. 하지만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격한 언어와 감정 섞인 설전이 이어졌고 양쪽의 간극만 확인한 채 만남은 끝났다.

검사들의 주장은 간단했다. 검사 출신이 아닌, 청와대의 입김을 받는 ‘믿을 수 없는 외부 인사’들이 검찰 인사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검찰에 넘기라는 얘기였다. 노 대통령이 기대했던 검찰개혁,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어떻게 분산할 건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견도 오가지 않았다. 대신 대통령을 향한 그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새파랗게 젊은 검사들은 대통령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호기롭게 ‘맞짱’을 떴다. “언론 지상에서 대통령께서 83학번이란 보도를 봤다”며 대통령이 고졸 출신이란 점을 비꼬는가 하면 “많이 서운하지 않으시냐”며 비아냥거렸다.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이 힘들게 입을 열었다. “대통령의 개인적 약점을 거론하는 자리가 아니죠.”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 검사들의 태도는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함으로 비칠 정도였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다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검찰은 막강한 권력집단이다.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통과로 수사 범위가 축소되었다지만 여전히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틀어쥐고 있다. 기소독점권에 기소재량권까지 그들의 손에 있다. 경찰이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영장 청구를 요청할지라도 검사가 ‘노’ 하면 그만이다. 전·현직 검찰 구성원의 비리를 경찰이 수사해도 검찰이 영장 청구 요청을 기각하면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다. 자신들의 조직을 보호하고 경찰을 통제하는 데는 이만한 장치가 없는 셈이다.

기소권 독점 역시 엄청난 힘이다. 특정인을 법정에 세울지 말지는 검찰 마음이다. 아무리 중죄인이라도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재판을 받지 않는다. 꼬투리를 잡아 기소하면 어쨌든 법정에 서야 한다. 유무죄 여부는 다음 문제다. 무소불위의 검찰권을 행사함으로써 검찰은 그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았다.

엊그제 취임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를 하다가 한직을 전전하던 특수통 검사들이 전면에 다시 등장했다. 죄다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장관의 검사 시절 ‘에이스’ 소리를 들어가며 손발을 맞춰온 ‘선수’들이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과 최측근 장관, 그들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핵심 라인’이 일선 검찰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앞서 대통령실의 법률, 인사, 총무비서관 등 핵심 보직에 기용된 6명 중 5명이 검사나 검찰 수사관 출신이다. 검찰의 독립성이나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고민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다. ‘능력 위주’의 인선이라고 주장하지만 누가 봐도 윤 대통령의 특기인 ‘자기 사람 챙기기’의 결정판이나 다름없다. ‘윤석열 직할 체제’가 완성되면서 검찰이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려 수사할 것이란 우려는 얼마 안 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정권 사람들이 줄줄이 검찰청사에 불려나가 포토라인에 서는 낯익은 장면이 펼쳐질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검찰은 이제 거칠 것이 없게 됐다. 과거에는 정치권과 결탁해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젠 검찰이 ‘권력’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대권을 잡은 전직 검찰총장과 법무부·검찰을 장악한 그의 수하들이 그렇잖아도 막강한 힘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경우, 그 누구도 이를 제지하거나 견제할 수 없다.

2011년 출간된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검찰, 그리고 검찰 세력은 대한민국의 요소요소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을 장악해 들어가고 있다. 법무부를 장악하고 한나라당 등 정치권과 국회를 장악하다시피 한 것도 검찰 세력들이다. (…) 검찰 세력의 권력욕이 우리 공동체의 안정성과 법의 지배를 파괴하는 형국에 이르게 되었다.”

11년 전에도 우리 사회는 권력화되어가는 검찰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라는 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진짜 ‘검찰공화국’에 살고 있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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