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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여적

에어포켓

경향 신문 2021. 2. 23. 09:43

20일 경북 경주 감포 해상에서 해경이 높은 파도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전복된 어선 내부에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선체 타격을 시도하고 있다./해경 제공

수심 30m 아래, 캄캄한 바닷속 선박을 수색하던 잠수사의 손이 보이자 그가 꽉 움켜잡았다. “한 명 찾았군요. 살아 있어요! 붙잡아요!” 2013년 5월 나이지리아 인근 해상에서 뒤집혀 침몰한 예인선 재스컨4호의 29세 요리사 해리슨 오케네가 사고 60시간 만에 구조되는 순간이었다. 침몰 당시 화장실에 있던 오케네는 숨 쉴 공간이 남은 곳을 찾아 선실로 대피했고 콜라 한 병으로 허기를 버티며 간신히 생명을 유지했다. 가장 큰 고통은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이었는데, 바닷물을 마셨더니 혀가 다 벗겨졌다고 했다. 그는 “내가 있던 곳에 왜 물이 다 차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2012년 1월 이탈리아 근해에서 좌초해 90도 기운 채 물에 잠긴 유람선 콩코르디아호에서는 한국인 신혼부부가 물이 차지 않은 복도 공간에서 버티다 30시간 만에 구조됐다. 2009년 일본 해역에서 발생한 어선 전복 사고 때에는 선원 3명이 나흘 만에 생환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17년 12월 인천 앞바다에서 일어난 영흥도 낚싯배 전복 사고 당시 배에 갇힌 낚시객 3명이 조타실에서 90분간 기다린 끝에 목숨을 구한 일이 있었다.

이들의 생존을 가능케 한 공통 요인이 ‘에어포켓’이다. 배가 침몰했을 때 선체 윗공간 내부에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고 남아 있는 공간을 말한다. 공기가 채워진 밀폐 공간 안으로는 공기 부피만큼 물이 들어오지 않아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밀폐가 잘되지 않는 대개의 일반 선박에서는 에어포켓이 만들어지는 사례가 드물다. 설령 에어포켓이 생긴다 해도 공간이 충분치 않으면 오래 버틸 수 없다. 물과 식량도 있어야 하고, 차가운 물에 닿지 않으며 저체온증을 이겨내야 생존한다. 에어포켓을 통한 생존이 기적이라 불리는 이유다. 여기에 조기 구조가 곁들여져야 함은 물론이다.

경북 경주 앞바다에서 전복된 9.7t급 어선의 선체 안에 갇혀 있던 한국인 기관장이 40시간 만에 구조됐다. 에어포켓이 된 선내 작은 창고 안에서 웅크린 채 이틀 동안 구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의 생환은 에어포켓 덕분만이 아니다. 차가운 바닷속에서 공포와 싸우면서 삶의 희망을 놓지 않는 불굴의 의지가 에어포켓 기적을 부른 것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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