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었다. 지난해 장애인 송년모임에서 설전이 오갔던 화두는 새해가 병신년(丙申年)이어서 듣기 민망하다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병신년 대신 빨간 원숭이해로 써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장애인 스스로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결과라며 의연해져야 한다는 측으로 팽팽히 맞섰다.

병신년이 희화되어 개그 소재나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되면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이 모아졌는데, 벌써부터 언론에서 병신년의 뉘앙스를 이용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인터넷에서는 새해 소망을 기원하다가 ‘그래봤자 병신년’이라며 노골적으로 희화화하는 것을 보고 지나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병신을 넣은 욕을 많이 사용한다. 장애인 입장에서 그런 욕을 들으면 비장애인보다는 그 욕의 강도가 더 강해진다. 그중에서 정말 가슴 아픈 것은 병신이라고 해놓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지나친 예의(?)이다. 사과를 한다는 것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는 반증이니 말이다.

사람들이 장애인을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장애인은 정말 쓸모없는 사람일까?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 명인 박연은 ‘세상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다’며 시각장애 음악인에게 관직을 주어야 한다고 임금에게 건의했고 세종은 박연의 청을 받아주었다.


스타벅스 코리아 최초 청각장애인 부점장 된 권순미씨_경향DB


<세종실록> 75권에 사간원 우정언, 이맹전이 세종에게 “시각장애인 지화와 이신에게 관직을 주어 사모와 품대 차림으로 조정에서 관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사대부를 수치스럽게 하는 처사이니 관직을 파하고 녹봉만 내려 그 공을 치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간언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자 세종은 사옹원의 관직은 공인, 상인, 천인 등 모두에게 가능하다며 장애인에게 벼슬을 주는 것은 그들의 공에 대한 정당한 대우임을 밝히고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쳤다. 세종은 세상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박연의 말에 크게 감동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세종이 신분이나 장애에 상관없이 능력 있는 인재들에게 기회를 준 것은 사람을 판단하는 데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600년 전에도 이렇게 열린 시각을 갖고 있었는데 첨단과학기술로 고도 성장한 현대에 장애인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새해가 병신년이라고 발음을 걱정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참으로 초라해지는 새해이다. 문화비평가 호미 바바는 어느 사회나 지배문화와 피지배문화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제3의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은 변화의 가능성을 여는 희망이 있다고 했다. 바로 이 제3의 공간에 장애인이 있다. 새해에는 그런 긍정적인 변화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병신년의 어감을 떨쳐버리고 세상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방귀희 | 한국장애예술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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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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