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은 지난 3월 <피해 할머니 없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 시대 온다>는 기획보도를 실었다. “얼마 안 가 피해자 없는 시대를 맞이할 텐데, 그때는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실상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확산시킨 것은 당사자 할머니들과 이를 응원한 시민들이었다. 1990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 결성으로 문제 해결 노력의 싹이 텄고,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전 세계적인 여성인권문제, 전시 성폭력 문제로 부각됐다. 이듬해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를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그중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최악이었다. 2015년 피해 할머니들의 의사도 반영하지 않고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하며 덜컥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맺었다. 합의에 따라 졸속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통해 피해 할머니들을 돈으로 꾀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재단 해산으로 겨우 원점으로 돌렸지만, 이로 인해 한·일관계는 더욱 꼬이게 됐다.

재일 조선인 르포작가 김영은 “일본에서는 일본이 이미 여러 번 사죄와 유감을 표했고, 아베 신조 총리가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얘기했지만 한국이 계속 물고 늘어지고 있다고 여긴다”고 전했다. 지난 3일 일본의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초청받은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 사흘 만에 강제 철거되기도 했다. 앞서 2일 전시회를 찾은 나고야 시장은 “위안부 문제가 사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망언했다. 과거사를 지우려 표현의 자유마저 서슴없이 포기한 셈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또 별세했다. 올해만 5명째로, 이제 생존자는 20명뿐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이들의 목소리를 온 힘을 다해 기억하고 널리 알리는 일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기억투쟁’이다. 하지만 현실은 갑갑하다. 정부가 2012년부터 해왔다는 데이터베이스 작업은 위안부 자료 통합 사이트조차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빨리빨리’의 나라, ‘IT 강국’이란 말이 무색하다. 일본의 과거사 도발에 대응하는 방식은 비단 경제 조치만이 아니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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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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