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촛불의 시간>에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와의 일화를 소개한다. 그가 “국민이란 말 대신 ‘시민’이란 말을 쓰세요”라고 했더니, 박 후보는 “그것은 전주 시민, 대구 시민 아니에요?”라고 되물었다. 송 교수는 “시민에 대한 역사적 개념이 결여된 것이며, 이 정권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시민을 국민으로만 간주했다는 데서 쓰라린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에는 ‘국민’이 57차례 등장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국가주의 DNA’는 박근혜 그 자체였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둔 시점이다. 피겨선수 김연아를 등장시킨 TV 광고가 큰 파문을 일으켰다.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 너는 대한민국이다”라는 강렬한 문구와 음성을 강조한 광고는 ‘국가 마케팅’의 절정이라 할 만했다. 국가대표로 뛰니 너는 국가 그 자체라는 영상에는 국가주의 기운이 그득하다. 비난이 쏟아졌다. 한 시민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 압권이었다. “당신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로 시작되는 영상은 “당신은 김연아입니다”로 맺는다. 올림픽 때면 등장하는 ‘애국 마케팅’쯤으로 넘어갔을 ‘김연아 광고’에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건, 국가주의를 앞세워 개인의 자유와 삶마저 억압하려드는 시대 상황과 맞물려 있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문재인 정부를 ‘국가주의’로 호명하고 나섰다.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증폭된 국가주의에 대한 거부정서를 끌어 문재인 정부를 타격하려는 야심 찬 기획인 성싶다. ‘국가주의’의 적부는 일단 제쳐두고, 김 위원장이 국가주의의 사례로 든 게 좀 뜨악하다. ‘먹방’ 규제, 초·중·고 카페인 식품 판매 금지 등을 내세웠다. 청소년을 유해식품으로부터 보호하고, ‘국민’ 건강을 지키는 게 국가주의와 무슨 상관일까. 미국과 유럽은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온갖 규제책을 펴고 있다. 패스트푸드를 규제하고, 설탕에 비만세를 매기고, 술 광고를 제한한다. 이런 걸 국가주의라고 한다면 선진국은 죄다 국가주의 천국이겠다. 국가주의와 같은 정권의 정체 논쟁을 제기하려면 그에 부합하는 정책과 근거들을 제시하는 게 마땅하다. 해서 묻고 싶어진다. 김 위원장이 말하는 국가주의는 대체 무엇인가?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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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