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나의 소원’, 1947년)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고 싶다는 백범 김구의 말은 겸사가 아니었다. 오랜 소망이었다. 그는 <백범일지>에서 1910년 안명근 사건에 연루돼 투옥됐을 때 독립정부의 뜰을 쓸고 문을 지키는 것을 소원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실제 상해 임시정부에서 그는 도산 안창호에게 문지기를 청했다. 문지기는 낮은 직책이다. 그런데 임정 내무총장인 도산은 뜻밖에도 경무국장(현 경찰청장) 임명장을 내밀었다. “감당할 수 없는 자리다”(백범), “왜놈 사정을 잘 아는 인재를 등용한 것”(도산). 밀당 끝에 백범은 1919년 8월12일 경무국장에 취임한다.

임시정부 경무국은 독립운동가 보호, 청사 경비뿐 아니라 일본군 정탐, 반민족행위자 처단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인력은 정·사복을 포함해 20여명. 백범은 초대 경무국장직을 5년간 수행했다. <백범일지>에는 1922년 상해 황포탄 폭탄투척에 가담한 독립운동가를 보호하고, 일본 밀정 김도순과 정필화를 검거해 처단한 일 등 경무국의 활약상이 상세히 실려 있다. 경찰 총수로서 자부심이 컸던 백범은 경무국장 시절 콧수염을 기르고 백색 정장과 구두 차림으로 찍은 사진을 남겼다. ‘임정 초대 경무국장’은 백범 독립운동의 출발이었다.

일제강점기의 경찰은 ‘순사’나 ‘하수인’의 이미지로 각인된 친일·부일세력이었다. 그들은 독립운동가를 체포·고문·구금하며 식민체제 유지에 기여했다. 임시정부 경찰은 달랐다. 교민과 독립운동가를 보호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는 경찰 본연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 활동이 임시정부를 지켜냈다. 경찰청이 8월12일을 ‘임시정부 경찰기념일’로 정하고, 경찰청사에 백범 흉상을 설치했다.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다는 선언이다. 백범 흉상의 표석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정부의 문지기가 되는 것이 꿈일 만큼 가장 낮은 곳에서 겨레를 섬겨 민주경찰의 표상이 되었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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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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