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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공유 부엌

경향 신문 2021. 5. 4. 09:53

서울 성북구 ‘안암생활’의 내부 공유주방 / 권도현 기자

성주, 터줏대감, 삼신할머니, 조왕, 업신, 뒷간신…. 한집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신들의 이름이다. 산업화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집은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었다. 신들도 더불어 살았다.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공간이 바로 집이었다. 대들보에는 집·집안을 관장하는 신 성주가, 안방에는 아이들의 수호천사인 삼신할머니가 있었다. 집터의 신 터줏대감은 마당에 자리 잡고, 창고에는 업신이, 화장실에는 처녀귀신인 뒷간신이 존재했다. ‘제사’가 조상을 모신다면 가신(家神)을 받드는 의례가 ‘고사’다.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생활방식, 주거형태가 서구식으로 변했다. 가신들이 거처할 공간이 없어졌다. 가신 신앙도 민속학계의 연구 대상으로 박제화됐다. 가신이 떠나면서 집이 지닌 성스러움도 시나브로 사라졌다. 신들이 삶을 품어주던 집은 그저 투자의 대상,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이 됐다. 물론 조왕신이 관장하던 부엌도 ‘키친’으로 불릴 만큼 형태, 의미가 변했다. 어머니들이 부뚜막 한편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자식의 안녕을 빌던 그 조왕신도 사라졌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3일 ‘공유부엌’ 추진 방안을 의결했다. 이달 중순까지 관계부처의 구체적 이행계획도 챙긴다고 한다. ‘공유부엌’은 바우처를 지급해 급식을 지원하는 현행 제도의 단점을 극복, 취약계층·결식아동에게 온전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정부 출범 당시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내놓은 ‘국가 및 지역 푸드플랜(먹거리 종합전략) 수립’의 일환이지만 그동안 추진을 미적거렸다.

그사이 ‘공유부엌’은 ‘공동부엌’ ‘마을부엌’ 등의 이름으로 곳곳에서 시도되어 왔다. 지자체와 시민사회단체, 지역 협동조합 등이 나선 것이다. 굶지 않을 권리인 먹거리 기본권 보장, 친환경 지역 농산물의 소비활성화, 지역 공동체성 회복 등이 취지다. 어머니의 정화수와 조왕신이 공존하던 부엌의 정신을 되새기는 신개념 부엌이자 현대판 사랑방이다. 늦은 만큼 정부는 세심하고 적극적인 ‘공유부엌’ 정책을 펼쳐나갈 필요가 있다. 건강한 먹거리와 먹거리 기본권 보장, 지역 농산물 활성화와 공동체성 회복은 시대의 화두가 아닌가.

도재기 논설위원 jaekee@kyunghyang.com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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