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허 이태준이 <문장강화>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39년 2월이었다. 그는 문학잡지 ‘문장’에 9회를 연재한 뒤 이듬해 문장사에서 단행본을 펴냈다. 당시 이태준의 고민은 ‘왜 말은 쉽게 하면서 글은 쉽게 써내지 못하는가’였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운문과 산문의 구별, 일기·서간문·기행문 작성법, 퇴고의 요령, 표현 기술 등에서 새로운 문장 작법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요컨대 <문장강화>는 글쓰기 기술에 대한 책이다. 요즘 나온 글쓰기 서적들은 <문장강화>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80년이 흘렀지만, <문장강화>는 ‘글쓰기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화백

이태준에게 글쓰기의 요체는 표현력을 어떻게 높이느냐였다. 그러나 글쓰기의 목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글쓰기에서는 ‘어떻게 쓰는가’에 못지않게 ‘왜 쓰는가’가 중요하다. 글쓰기의 철학과 자세는 문장의 내용과 함께 형식까지 지배하기 때문이다. 작가 조지 오웰이 밝힌 글쓰기의 동기는 기억할 만하다. 그는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로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등 네 가지를 들면서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오웰의 선언은 글쓰기의 지평을 넓혔다. 글쓰기는 더 이상 ‘표현의 기술’이 아니다. 문화, 종교,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이면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수단이다. 단순한 문장 작법이 아니다. 세계를 인식하고 자아를 성찰하는 소통의 통로다. 이 지점에서 글쓰기는 인간 공동체의 삶을 지향하는 인문학과 연결된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학과 시민강좌에서 글쓰기 교육이 중요하게 다뤄진 것은 이 때문이다.

대학들이 최근 글쓰기 과목을 축소·폐지하면서 코딩, 인공지능(AI) 등 소프트웨어 관련 수업을 늘리고 있다. 일부 대학에는 인문학 과목 축소를 비판하는 대자보까지 붙었다고 한다. 4차산업 시대에 컴퓨팅 사고, 빅데이터 통계 등 미래교육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정보화지식이 미래의 모든 것에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정보사회를 분석하고 성찰하는 비판적 사고도 필요하다. 글쓰기와 인문학은 코딩과 AI가 할 수 없는, 또 다른 미래교육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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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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