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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도시의 박쥐

경향 신문 2020. 9. 18. 11:08

박쥐는 북극과 남극을 제외한 세계 전역에 서식한다. 1400여종으로 종류가 많아 전 세계 포유동물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생물학자들은 박쥐를 지구상에서 절대로 사라지면 안 되는 생물 5가지 중 하나로 꼽는다. 인류 진화에 통찰력을 주는 영장류, 꽃가루를 옮기는 벌, 광합성으로 산소를 만들어내는 플랑크톤, ‘자연의 청소부’ 역할을 하는 균류(곰팡이)와 함께 인류 생존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박쥐는 자연의 살충제로 기여한다. 엄청난 양의 해충을 잡아먹어 생태계를 안정시킨다. 바나나·망고 등 열대과일류의 꽃가루를 옮기는 착한 일도 한다.

그런데 박쥐는 인류를 위협하기도 한다. 박쥐는 에볼라·사스·메르스 등 대다수 감염병 바이러스의 1차 숙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의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3종류의 흡혈박쥐는 광견병을 사람에게 직접 전파한다. 체온이 높아 어지간한 바이러스에 끄떡없는 박쥐의 특성은 어디서나 생존하는 놀라운 적응력의 바탕인데, 이 때문에 박쥐는 온갖 바이러스를 가지고 사는 ‘바이러스의 저수지’로 통한다.

최근 인천·시흥·고양 등 도시 지역의 아파트촌에서 박쥐가 많이 나타나 주민들이 놀라고 있다. 대다수 박쥐들이 아파트 방충망에 한참 동안 달라붙어 있어 이를 없애달라는 민원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긴장하고 있는 시민들이 느닷없이 나타난 박쥐를 보고 감염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박쥐로 인한 감염 사례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저수지’를 함부로 접촉할 일도 없다.

박쥐들은 주로 ‘신도시’의 대단지 아파트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박쥐들이 그 지역에 전부터 살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겨울잠을 앞두고 먹이를 찾던 박쥐들이 아파트 방충망을 새로운 휴식처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아파트 개발로 인해 갈 곳 잃은 박쥐들이 사람들 세상으로 가까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숲이나 동굴 속에서 살고 밤에 움직이는 박쥐가 도시에서 대낮에도 살게 됐다. 인간 세상의 개발에 따른 환경 변화는 도시에서 사람이 박쥐와 공존해야 하는 풍경을 만들었다. 과연 박쥐는 사람의 적일까, 친구일까.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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