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죽음은 공포다. 그래서 영생이라는 유토피아를 향한 꿈도 불멸이다.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를 다스린 위대한 왕 길가메시도 마찬가지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찾아 모험에 나선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시두리라는 여인은 말한다. “신들이 인간을 만들 때 인간에게 죽음도 함께 붙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생명만은 그들이 보살피도록 남겨두었습니다.” 생명은 인간의 것이되 죽음은 신들의 영역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사후 세계를 믿었던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었을 때 사자(死者)들이 안전하게 내세로 갈 수 있도록 가이드북을 넣어 두었다. 그것이 ‘사자의 서’다. 죄가 많으면 아뮤트에게 잡아먹히고, 착한 사람은 오시리스의 왕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린다. 사자의 서는 영생의 꿈을 담은 것이다. 생명체의 생존본능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생명체의) 유전자는 절멸하지 않는 생존기술의 명수”라면서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기계’라고 단정했다. 이에 따르면 인간에게 생존은 본능이며, 자살은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조력자살을 돕는 국제단체인 디그니타스에서 2명의 한국인이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서울신문은 조력자살이 허용된 스위스에서 2016년, 2018년 1명씩 사망했다고 전했다. 이곳을 포함한 2곳의 조력자살 기관에 한국인 회원이 107명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사망 내역이 밝혀진 1명은 공무원 출신의 40대 남성 말기암 환자다. 그는 외국인 조력자살이 이뤄지는 취리히의 ‘블루 하우스’라는 2층집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조력자살은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등에서 허용된다. 특히 스위스에서는 말기암 환자뿐 아니라 장애자, 노인, 정신질환자도 가능하다. 조력자살을 허용한 이유는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삶을 끝낼 것인지 결정할 권리가 환자에게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생명존중은 문명사회의 토대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위엄과 권위를 보존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도 있다. 생명존중과 자기결정권 사이의 충돌이다. 어떻게 ‘존엄한 죽음’을 정의해야 할지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박종성 논설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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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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