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들은 얘기다. 정부 고위직에 있던 여성의 남편이 현직 법관이었다. 당시 대통령은 가끔 각료와 청와대 참모들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해 식사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이 여성 공직자는 다른 ‘싱글’ 여성들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 남편이 모임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식사 자리에서 만난 인사 중 누군가와 나중에 법정에서 마주치게 될 수도 있다. 모르고 지내는 편이 낫다’고 했다. 그는 사법시험·연수원 성적 모두 최상위권인 엘리트였다. 이후 법원행정처를 거쳐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라거나 감탄하지 않았다. 법관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의 윤리적 염결성(廉潔性)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달 31일 추가 공개된 ‘양승태 법원행정처’ 문건들은 이런 믿음을 산산조각 냈다. 2015년 3월 작성된 ‘법사위원 대응전략’ 문건에서는 국회 법사위원들에 대한 ‘접촉 루트’로 법관들을 지목하고 있다. 김진태 의원의 경우 민일영 대법관과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 홍모·이모·김모 고법부장이 거명됐다. 김도읍 의원의 경우 김모 지법부장, 전해철 의원은 노모·유모 고법부장, 서기호 의원은 이모 판사와 이모 전 판사, 김재경 의원은 김모·임모 고법부장, 이상민 의원은 남모·전모 부장, 서영교 의원은 노모 부장과 박모 변호사(전 판사)가 담당자로 적혀 있다.

2015년 7월 생산된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법무부 설득방안’에는 ‘김주현 법무부 차관을 새로운 접촉면으로 정하여 절친인 이모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통해 설득 시도’라는 대목이 나온다. 주목되는 것은 이어지는 문장이다. ‘But(그러나), 역시 별다른 진척 없고, 추가 설득 여의치 않은 상황.’ 실제 접촉이 이뤄졌으나 성과가 없었음을 시사한다.

입법 과정에서 관련 부처·기관·단체는 국회의원에게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 부당한 압력이 작용하거나 대가가 오가지 않는 한 문제 될 게 없다. 심판자인 법관은 다르다. 어떤 경우도 청탁을 하거나 신세를 져선 안된다.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들이 언제든 피고인석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성 공직자의 남편’ 같은 판사들이 절대다수일 거라 믿는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로비하는 판사들’은 반드시 솎아내야 한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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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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