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 테러(white terror)’는 극우 또는 우익에 의한 테러로, 좌익 세력에 의한 테러인 ‘적색 테러(red terror)’와 대비된다. 백색 테러는 프랑스 혁명기인 1795년 혁명파에 대해 왕당파들이 가한 보복 행위를 지칭한 것이 기원이다.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자코뱅파의 거두 로베스피에르가 이끌던 공포정치가 끝나자 전국 각지에서 자코뱅파에 대한 왕당파의 조직적, 비조직적 테러가 자행됐다. 당시 유럽에서는 신분과 파당을 나타내는 코케이드(cockade·모표)를 모자에 꽂고 다니는 게 유행했는데, 왕당파들이 흰색 코케이드를 달고 다닌 것에서 ‘백색’이라는 말이 유래했다. 당시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표장이 흰 백합이었던 것이다. 1871년 자유를 요구하는 민중의 파리코뮌이 실패로 돌아간 뒤 1주일간 베르사유 정부에 의해 또 다른 백색 테러가 자행된다. ‘파리의 다리 아래에는 강물이 아니라 시신이 흐를’ 만큼 그 결과는 참혹했다. 

적색 테러는 러시아 혁명기 볼셰비키에 의한 테러가 그 시초다. 볼셰비키의 공안기구 체카(checka)는 체제 수호를 명분으로 반혁명 세력인 백군을 색출, 처단했다. 100년 전 프랑스 왕당파의 백색 테러를 모방한 전술이었다. 이런 적군을 상대로 백군도 백색 테러를 자행했다. 

백색 테러는 남의 일이 아니다. 1947년 7월19일 해방 공간에서 좌우합작에 매진하던 몽양 여운형이 백주에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극우파의 총격을 받아 절명했다. 그리고 2년 뒤 백범 김구 역시 서대문 경교장에서 백색 테러에 희생됐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백색 테러와 달리 이 땅의 백색 테러는 정치 흐름을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색 테러의 음습한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3일 정의당 원내대표인 윤소하 의원실로 상자 하나가 배달되었는데, 흉기와 죽은 새, 협박 편지가 나왔다. 자칭 ‘태극기 자결단’이라는 발신인은 편지에서 “너는 우리 사정권에 있다”고 협박했다. 정의당은 “명백한 백색 테러”라며 수사를 촉구했다. 온갖 막말에 과거로 회귀하는 저열한 보수 정치권의 행태가 이런 망령을 불러낸 건가. 발신자를 끝까지 찾아내 엄단해야 한다. 이런 일을 용인한다면 민주사회가 아니다.

<이중근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